since.2000.09.07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 

1994년 인터뷰 중

유명한 호크니전은 결국 놓쳤고 누가 베르나르 뷔페전 이야기를 해서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더라, 했는데

Homme a l’oeuf sur le plat(접시 위 계란 그리고 남자), 1947

포스터의 이 그림을 보니 어디선가 그림과 화가 이름을 동시에 접했던 듯하다.

어떤 전시회인지 검색하니 신기하게 연관검색어가 ‘도슨트’? 블로그에 뜨는 후기들도 도슨트에 대한 칭찬이 자자해서 소위 ‘베르나르 뷔페가 누구인지 모르고 들어갔다가 도슨트 해설을 듣고 나올 때쯤에는 뷔페의 팬이 되어 나온다’고…
화가에 대한 정보는 가능한 한 많이 찾아보고 가지만 전시회 가면 설명 없이 그림 자체를 즐기겠다는 얄팍한 핑계로 오디오 가이드도 안 빌리는데 이번에는 마침 세 식구 모두 관람할 기회라 궁금해서 도슨트 시간에 맞춰 갔다.


후기를 보다보니 30분 전 쯤 가서 미리 한 바퀴 돌고 설명을 들으면 좋다길래 미리 가서 보고 시간 맞춰 다시 전시회 처음으로 돌아오니… 이 도슨트는 이미 유명해졌는지 지금까지 미술 전시회에서 도슨트 설명을 기다리는 인파가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봤다. 월요일 2시 타임에 관람객이 그렇게 많은 것도 놀라운데 도슨트 말로는 금요일 같은 때는 지금의 2배 가까이 된다고.(무슨 도슨트 계의 아이돌을 보는 기분;;)

미리 한바퀴 돌라는 건 도슨트 설명 듣는 동안 인파 때문에 아예 작품을 볼 수가 없어서일 듯. -_-; 일반 관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도슨트 타임을 피해서 들어가야할 정도였다.

Chateaux de la Loire: Chenonceau 1969
나는 두껍게 발라 칠한 유화나 삽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풍경화들이 꽤 마음에 들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마음에 들었던 그 풍경화들은 화가의 어두운 시기의 시작이었다. -_-;

내가 먼저 한 바퀴 돌 때는 위의 뾰족하니 앙상한 인물화나 직선과 검은 테두리로 가득한 풍경화 등등이 눈에 많이 들어왔고 그래서 정말 ‘성마른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인생도 사람도 괴팍하고 까칠할 것 같은’ 인상이었으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도슨트와 함께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된 배경과 화가의 현실 등등을 들으며 전시회장을 돌기 시작하니 아까 내가 본 물기없는 정물화들은 사실 전쟁 중의 척박한 환경이었고 바싹 마른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굶주린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고 아까의 그림들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게다가 작가는 지인들의 평으로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가장 싫어하는 ‘착한 사람’이었다고. 역시 화풍으로 사람을 짐작할 일은 아니었다. -_-; )

일단 이 전시회 도슨트는 정말 추천.
우리나라에서 이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정말 별로 없고 도슨트 분이 전체적인 전시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잘 풀어줘서 전시회장 한바퀴 다 돌고 나면 굉장히 알차게 감상할 수 있다.

베르나르 뷔페와 아내 아나벨 뷔페.
사진작가 룩포넬은 위쪽의 노파를 찍기 위해 아래에 두 사람을 앉혀뒀는데 그 자리에서 둘은 바로 불꽃이 튀었다고..(…)
린양이 전시회장의 이 사진을 보고 ‘저 할머니는 뭐지?’ 했는데 알고보니 이 사진에서는 저 할머니가 메인이었어. -_-;
Nature morte au testament(유언장 정물화), 1963
1963년 4월 15일
이것은 나의 유언장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나의 부인 아나벨 뷔페에게 남긴다.

혹여 유언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그림에 온통 본인의 지문을 찍어놨는데, 자신의 유언장을 그림으로 남길 생각은 정말 화가 밖에 할 수 없는 일 아닐까. 원화를 보면 선명하게 곳곳에 찍혀있는 지문에서 어떤 순수함마저 느껴진다.
결혼한지 10여년 정도밖에 안 됐을 때 그린 것이라 이른 유언장이었지만 말년에 파킨슨 병으로 손이 심하게 떨려서 정작 마지막에 남긴 글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 유언장은 볼수록 얄궂다.

전시회 초입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면 화가인가, 배우인가 싶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의 뷔페는 1928년생으로, 2차대전 한복판에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자신이 겪은 어둡고 두려웠던 현실을 모두 자신이 가진 미술적 재능으로 폭발시켜 등장부터 주목을 받았고 이른 나이에 부와 명성, 아름다운 평생의 파트너까지 모두 얻었으나 어느 시대나 그렇듯 지나친 성공은 대중의 시기를 부르고, 어이없이 빠른 속도로 평판을 잃고 긴 세월이 지난 요즘에야 다시금 재조명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천재’라는 호칭으로 가려졌지만 실제로는 평생 끊임없이 작품의 방향을 고민하며 하루에 10시간 이상 꾸준히 작업해 수천점의 작품을 남긴 노력파 화가였다는데, 그저 묵묵히 남은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같은 그림을 두고 시대에 따라 양극단을 달리는 평단의 평가란 얼마나 세속적인 것인가 싶다. 그리고 뷔페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해 듣다보면 자신의 개인적인 어둠과 작품에 대한 번민으로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숨을 쉬듯 평생 그림을 그리는 데에 행복했고 정작 세간의 평가에 그리 미련을 갖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그렇게 머물렀다.
베르나르가 나를 버리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빈 곳으로 떠났을 때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울어서는 안된다고.
그는 불멸의 존재라 그의 그림이 나를 돌볼 것이라고

아나벨 뷔페

뷔페가 빠른 속도로 외면당하게 된 건 구상화에서 추상화로 넘어가는 시기적인 탓도 있었다는데 요즘에야 구상화든 추상화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근 유행하는 전시회들을 보면 그저 지금의 최고는 ‘배경 삼아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래서 SNS에 남기기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작품 대부분 크기도 크고 유화라서 터치나 색감이 인터넷의 평면적인 그림 파일로는 절대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것들이라 직접 원화로 보는 의미가 컸고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근래 가장 만족스러운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