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12월에 갑자기 정우철 도슨트가 설명하는 전시회를 하나 듣고 싶어서 찾다보니 가까운 예술의 전당에서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을 하고 있길래 얼리버드 티켓을 끊었는데, 정작 이 도슨트가 설명하는 날은 화요일 하루 뿐. 화요일은 린양도 바쁘고 옆사람도 일을 해야 하니 차일피일하다가 티켓 기한이 거의 다 돼서야 다른 지인들과 함께 다녀왔다.

생소한 화가일수록 도슨트 설명이 크게 도움이 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도슨트 계의 피리부는 사나이다운 매끄러운 설명과 함께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1929년생, 프랑스 화가로 프랑스 미술의 황금기 거장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마지막 화가다.(올해로 94세, 작년까지도 작품활동을 했었다고…)
그의 부모는 모두 화가였고, 특히 아버지는 알폰스 무하의 제자였는데 예술가의 집안에서 자란 브라질리에는 일찍부터 예술을 시작했고 프랑스 최고의 예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한다. 

파리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을 때 야수파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양드레 드랭, 블라맹크등의 야수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같은 아트딜러와 일했다. 자연스럽게 야수파 그림들을 빠져들었다.
마티스의 ‘춤’에서 감성과 이성의 완벽한 균형을 발견했다. 그가 마음 속 깊이 존경했던 마르크 샤갈과 예술적 교감을 하며, 서로의 작품에 존경을 가졌다.
지난 세기 급변하는 미술사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20세기 거장들의 회화의 힘을 믿는다. 모더니즘은 시대를 반영하지만,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화는 전시회 가서 원화를 보는 맛이 있어서 좋다.
블로그에 그림을 붙이면서도 아까 원화는 이 느낌이 아니었는데 갸우뚱할 정도.

열 살 즈음에는 덩케르크 한복판에서 가족과 함께 전쟁을 겪었고 가정을 이룬 후에는 다 자란 자식을 잃기도 하며 세상을 헤쳐나온 이 노화가는 ‘이 세상에는 이미 고통과 아픔이 많으니, 그림 만큼은 보는 이가 편안하고 행복할 작품’을 남기고 싶었다는데, 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녹색이 아닌 ‘푸른’ 숲과 푸른 말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석양, 알록달록 수많은 음악회 그림들, 그가 만나기 전부터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는 아내 샹탈의 그림 등은 보는 내내 저절로 행복했다.

아흔살 넘은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저 한글을 따라 그렸을 걸 생각하니 왠지 귀여우시네.

도슨트를 듣지 않더라도 전시장 안을 한껏 밝히는 작품들만으로도 한번쯤 볼 만했던 전시회.

요며칠 마음이 좀 심난했는데 덕분에 기분이 좀 화사해졌다. 이런 게 아마도 예술의 힘.

+저녁 먹다가 오늘 도슨트에게 들은 이야기-화가가 결혼 전에 주로 그려온 그림 속의 여자와 실제 결혼한 여자가 굉장히 닮았는데, 브라질리에는 부인이 된 샹탈을 보자마자 자신의 뮤즈라고 생각해서 만나고 석 달 뒤에 결혼했다고 했더니 린양 왈,
“무슨 배우자 기도 같은 건가”.
야….-_-

12 responses

  1. Tom

    배우자 기도하니 생각나는 게…
    내 친구네 형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결혼을 세번 했음. 그것도 한 교회 안에서.

    (….)

    1. Ritz

      그것도 능력인데요? 세번도 대단한데 한 교회 안에서… ㅋㅋㅋ

      1. Tom

        내가 두 번째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세번 했단 말 듣고는 “또??” 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더라. 아무리 잘난 직업이고 돈 잘 번다 하더라도 저게 된다고?? 하는 생각만. ㅎㅎㅎ

        배우자 기도라고 하니 그런 기도라도 열심히 한걸까 하는 생각이 새삼 스쳐 지나갔네.

        1. Ritz

          직업이나 돈 잘 버는 걸 넘어선 그 무언가인 듯. 마성의 남자인가…
          배우자 기도는 ‘이러저러한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래요. 그 분은 배우자 기도로 만난 사람의 오류를 세 번이나 수정한 모양. ㅋㅋㅋㅋ

          1. Tom

            교회에서 ‘마성’이라니 그거 일종의 신성모독이잖은가. ㅎㅎ
            암튼 그 ‘마성'(이라고 치면)이 외모에서 온 건 아님. ㅋㅋㅋㅋ
            가볍게 이야기 했지만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사연이 있긴 함.

            1. Ritz

              아무리 사연이 있어도 그걸로 세번이나 결혼을…-_- 원래 그런 사람들이 외모가 뛰어나거나 한 경우는 정말 없더라고요.

            2. Tom

              결과적으로 잘 살믄 됐지. 3번이나 리테이크 해주신 것을 보면 기도빨이 먹힌 모양.

  2. PRC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주는..것 비슷하려나요…

    1. Ritz

      그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이 있으면 그런 사람을 만나기 좀더 쉽다, 가 아닐까 싶네요. 
      저 배우자 기도라는 게 ‘내가 원하는 사람은 이러저러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더라고요. 
      보통 사람을 처음 만나면 낯선 사람이니 안 좋은 면부터 크게 보이는데 저렇게 미리 자기가 원하는 면을 정해놓으면 상대방에게 그런 부분이 있는지부터 보게 되는, 일종의 심리적인 효과 아닐까 싶더라고요. 

      1. PRC

        역시 소원은 구체적으로….

  3. 디멘티토

    저도 이번 주말에 보러 갑니다!!
    예전에 우연히 이 화가 그림을 보고 색감이 마음에 들어 좋아했는데 한가람에서 전시회를 한다길래 넘 기뻤어요. 얼리버드 티켓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예매하지 않았고 어영부영 하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네요.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실제로 볼 때마다 플란다스의 개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을 볼 때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하곤 합니다.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크나큰 행복인 듯 싶어요.

    1. Ritz

      얼리버드 티켓은 예매할 때는 여유있을 것 같은데 항상 쫓기면서 관람하게 돼요;;
      안그래도 도슨트가 오늘 2월 다른 날들보다 사람이 많았다고 하던데 그 도슨트로 관람할 수 있는 얼리버드 기한이 이번주와 다음주 두번 밖에 안 남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
      전시회 너무 좋았어요. 화가가 바란 마음처럼 행복하게 관람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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