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소소히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인데 새 시즌이 올라왔길래.

예고편 보면서 이번에는 그래도 좀 아는 사람들이 나오겠구나, 했는데(앞 시즌에 아는 건 처칠 밖에 없었다…) 이렇게 포스터를 모아놓고 보니 이번 시즌은 유난히 서로 너무나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왕자님과 결혼한 금발의 공주님은 동화책처럼 ‘happily ever after’ 하지 못했고,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여왕님은 이번 시즌에도 오직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변을 살피며,
이 초지일관 화려한 이야기에 새롭게 등장한, 스스로 노력해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평민 여성은 지금까지 보는 사람 눈을 현혹시키던 우아한(?) 왕가 사람들을 개미가 베짱이 보듯 ‘한심하게’ 바라보며 작품에 잠시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다이애나 비의 이야기는 이미 다른 다큐로 본 적이 있어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왔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지만 찰스의 이기심을 드라마로 보니 한층 생생해서 짜증나면서도 ‘저렇게 왕위를 놓기 싫어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며 한 사람 인생 고이 밟았는데 정작 욕은 욕대로 먹고 지금까지도 왕이 되지 못한 게 저 사람에게 가장 큰 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처는 세계사 시간에 ‘철의 여인’이라고 업적 몇 가지 외운 것 말고 별로 자세히 아는 게 없다보니 캐릭터 면에서 오히려 흥미로웠는데, 저 시절에 여성으로서 유례없이 성공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실에 대한 자신감에 취해서 타인의 실패를 ‘노력없음’으로 쉽게 몰아붙인다든지 자신은 여성이지만 다른 여성에 대한 평가는 남성의 눈으로 본다든지, 한 나라의 수상이지만 가정에서는 주부로서도 완전하고 싶어하는 욕심, 같은 여성인 딸보다 아들에게 쏠리는 애정(나중에 찾아보니 이 아들이 결국 범죄자가 됐더란…) 등등 이번 시즌은 주인공이 대처인가 싶을 정도로 다각도로 보여줬지만 전반적으로 다소 왁살스럽게 그려져서 확실한 건 이 드라마에서는 대처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앞 시즌에서 초지일관 수상의 카운셀러 마냥 아무런 정치적 관여 없이 보고를 듣기만 하던 여왕이 이번 시즌에서 대처와 충돌하는 모습은 잔잔하지만 박진감이 넘쳤고 드라마 후반의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을 보면서 아무리 기싸움을 해봤자 수상은 임기가 끝나면 내려오는 자리, 여왕은 어떤 상황에서든 불변하는 권력이구나, 저래서 여왕은 죽는 날까지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지 않겠지… 하는 느낌이 왔다.

이 드라마에서는 누가 찰스에게 이 비슷한 대사를 할 때마다 보는 사람에게는 웃음 포인트가 되어버리는 게 문제….
그래서 그 장차가 언제….

몇시즌까지 가려나 해서 찾아보니 6시즌으로 완결 예정, 다음 시즌에는 다시 여왕과 몇몇 역할은 좀더 나이 든 배우로 바뀐다고.

영국 왕실에 대한 이야기는 넷플릭스에 다큐로 올라온 「윈저 이야기: 영국 왕실의 비밀」을 재미있게 봤었는데, 유럽 곳곳에서 왕실이 무너져갈 때 영국 왕실은 신비주의를 버리고 기민하게 미디어와 거리를 좁혀 ‘통치가 아닌 군림’하는 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해 생존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해서 지배자가 아닌 쇼 비지니스 산업의 일부가 돼버린 것에 대해 본인들은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좀 궁금했다.
현재 여왕까지는 그래도 왕 노릇을 조금이나마 해봤다 치지만 그 아래 세대들은 왕족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어정쩡한 셀럽으로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되기만 하는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고(게다가 찰스 왕태자는 이제 거의 밈이 되었고…) 그래서 직계가 아닌 사람들은 점점 (별 의미도 없는) 권리를 포기하고 이탈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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