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이상하게 부엌 정리가 땡기더라니 모든 일은 전조가 있나보다.
아마 예전처럼 아래가 어수선한 채였으면 알지도 못하고 지나갔을텐데 하부장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 싱크대 아래쪽을 보니 프라이팬 정리대 근처에 살짝씩 물기가 보였다. 처음에는 프라이팬 씻고 제대로 안 닦아서 내려놔서 그런가, 하고 지나쳤는데 설거지 끝나고 나면 계속 약간씩 고여 있는 것 같아 유심히 살펴보니 우리집 싱크대 아래에는 혜린이방 에어컨 배수 호스와 싱크대 배수 호수 두 개가 묶여서 배수 파이프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데 싱크대 물이 많이 빠질 때마다 두개 묶어놓은 틈으로 살짝씩 물이 튀어오르고 있는 상황.
감아놓은 테이핑이 약해져서 그렇겠지 하고 옆사람에게 부탁해서 테이핑을 새로 하고 뭘 더 건드렸다가 일이 커지면 연휴에 고생할 것 같아 뭐가 됐든 다음주에나 처리해야겠다 생각했는데…
그 시점에서 오히려 요근래 싱크대에서 많은 물이 한번에 내려갈 때 평소보다 잘 안 빠지는 문제를 그냥 넘기면 안되는 거였다.
어제 밤에 설거지하면서 틈틈이 호스 쪽을 확인했는데 물이 또 한번 확 내려가야 할 타이밍이 되니 급기야 물이 밖으로 콸콸 새어나오기 시작. 아파트는 이렇게 바닥이 물로 젖는 문제가 규모가 커지면 아래집 천장까지 누수가 생길 수 있어서(예전 집에서 아래 집 누수 문제로 집주인이 몇 번이나 고생하는 걸 봐서) 부랴부랴 수건으로 대충 수습하고 테이프 다 떼어내고 대야 받친 채로 호스를 뺐더니, 빼는 순간 끝에서 뭔가가 한뭉치 털썩 떨어졌다.
순간 내가 키친타올이라도 흘려보낸건가(구조상 불가능함) 싶어 자세히 보니 그야말로 기름때 덩어리가 뭉치고 뭉쳐서 호스 앞을 거의 막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 상태에서 물이 내려가고 있었던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
호스 쪽 기름때가 문제였나 싶어 배수관에 직접 물을 흘려보내봤는데 이쪽도 제대로 막혀버렸는지 내려가지를 못하길래 좁은 공간에 온 몸을 디밀고 배수관 안을 비춰보니 안쪽도 이미 엉망.
기름때를 좀 긁어내고 싶은데 마땅한 도구가 영 보이는 게 없다. 일단 옆사람은 다이소에 뭔가 쓸만한 게 있는지 보겠다고 사러 나가고 나는 이래저래 둘러보다가 결국 생각한 게 요런 모양.
옆사람이 다이소에서 배수구 머리카락 건져내는 긴 플라스틱부터 이것저것 사서 돌아왔는데 결국 가장 효과적으로 긁어올린 건 이거였다.
일단 배수구 입구 쪽에 보이는 기름때만 대충 긁어낸 다음 뚫어뻥을 정량으로 붓고 기다렸다가 다시 흘려보니 별 차이 없는 상황. 여기저기 검색하다보니 옆사람이 찾아본 글에는 심한 경우에는 뚫어뻥 한통 들이붓고 뜨거운 물로 기름때 녹이는 걸 대여섯번 반복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길래 여차하면 밤새 반복해보기로 하고 나가서 뚫어뻥도 여벌로 더 사서 들어왔다.
맨 처음에는 뚫어뻥을 부어도 워낙 천천히 내려가서 부을 수 있는 만큼만 붓고 기다렸다가 한번 더 들어가는 만큼만 붓고 다시 30분 기다린 다음 다시 부으면서 기다려보니 처음보다는 조금씩 들어가는 양이 많아지는 게 보여서 최대한 부을 수 있을만큼 부은 다음 30분쯤 지나 뜨거운 물을 1리터쯤 내려보냈더니 처음보다는 확실히 물이 잘 빠지는 게 보인다. 물 빠지는 상태로 봐서 밤새 반복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마지막에는 남은 세제를 모두 내려보낸 후 아침에 일어나서 뜨거운 물을 대량으로 한번 내려보기로 하고 취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뜨거운 물 흘려보내보니 뚫어뻥이 효과가 있긴 했는지 제대로 물이 내려가길래 일단 다시 호스 넣고 테이프로 밀봉하고 정리했다. 어차피 새 호스가 오면 다시 뜯어야 해서 이번에는 싱크대 호스만 넣고 감아둔 상태라 문제가 생겨도 어제처럼 파이프 밖으로 물이 새지는 않을 것 같다.(막힐 거면 차라리 싱크대 위로 역류하란 말이다…)
이번에 써보니 뚫어뻥 라벨에는 정량이 500ml라고 되어 있으나 문제가 생겨서 쓸 때는 택도 없는 양이었다. 그냥 한통 냅다 붓고 시간 지나면 뜨거운 물로 마무리하는 게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
다이소에서 파는 배수구 청소용 도구들은 크게 도움이 된 게 없었다. 찾아보니 아주 심하면 업체를 불러서 배관 청소를 하는 방법도 있는데 기계를 쓰는 일이라 운 없으면 배수관이 상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뚫어뻥이 독해서 배관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잘 안 썼는데 오히려 그래서 배수관이 아예 관리가 안 되고 있었던 모양.
작년 연말에 화장실 세면대와 욕조 쪽도 물 빠지는 게 느려져서 대대적으로 뚫어뻥 붓고 정리했던 게 생각나서, 내가 너무 배수 관리에 소홀하면서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인데 믿고 살았나보다 싶어 앞으로는 석달에 한번 정도 규칙적으로 싱크대와 욕실 배수관을 청소하려고 미리알림해뒀다.
어제 본 그게 7년치(비주얼이 정말 너무 어마어마했다 )라면 아마 앞으로 정기적으로 관리만 잘 하면 별 문제 없이 살지 않을까 싶긴 한데…
집에 뭔가 문제가 터지면 일의 크기에 상관없이 유난히 멘탈은 휘청휘청하고 저녁 내내 좁은 공간에 몸을 들이밀었다 뺐다 하며 동동거렸더니 오늘은 삭신이 아주 잔잔하게 쑤셔온다.
급한 마음에 혹시 배수관 뚫는 데에 좀더 쓸모있는 도구가 없을까 해서 쿠팡에 검색하니 스프링 달린 배수구 청소기가 보이길래 효과가 있나 싶어 후기를 내려봤다가 사람들마다 청소기를 산 이유가 천태만상이어서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잠시 웃었다.
내가 읽은 중 베스트 글은 쌀이 상했길래 그걸 싱크대 배수구에 그냥 버렸다가 난리가 나서 고생했는데 그 청소기로 해결했다는 후기(배수관 안에서 떡을 찐 셈일세…)와 썩은 고기를 변기에 버렸다가 그대로 막혔는데 한방에 해결했다는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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