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양 기말고사가 어제 끝나면서 ‘결과가 석차로 나올 예정인 시험’이라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또 하나의 처음이 지나갔다.(그리고 이제 ‘등수가 찍힌 성적표’라는 처음이 기다리고 있다. )
07년생인 린양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면,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는 걸 본 적이 없다. 교육부에서는 교육열이 과열되는 걸 막겠다며 선심쓰듯 초등학생 시험을 모두 없애 버렸는데─과목별 쪽지시험? 느낌의 성적을 산출하는 단원평가를 보는 과목이 가끔 있긴 했으나 이것도 선생님 재량인 듯─내가 보기에 이건 오히려 자기 아이의 성적을 학교에서 검증해주지 않으니 불안한 엄마들을 모두 학원으로 내몰았고 ‘학교 시험에서 *개 틀린’ 아이가 없는 대신 유명 ** 학원의 **레벨로라도 자기 아이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엄마들 덕에 학원만 흥하는 부작용을 낳지 않았나 싶다.
중1 올라오니 난데없이 앞으로의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주겠다는 이유로 시험이 없었다.(도대체 중1 때 마음먹은 장래희망대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린양 학년은 그 타이밍이 코로나와 겹치면서 깔끔하게 한 해를 날렸다.
이렇게 아이들이 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연습은 해보지도 못한 채로 중2가 되면 갑자기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생기는데 다시 놀랐던 건 중간고사 때는 과목 수가 학교마다 다르다. 보통 3~5 과목 사이인 모양인데(린양 학교는 세 과목이었다) 시험을 치는 과목도 학교마다 천차만별.
기말은 여섯 과목이었는데 중간고사와 겹치지 않는 과목의 시험 범위는 당연히 한 학기 분량. 여기에 없는 과목들은 수행평가 본 걸로 점수를 낸다.
예전에 우리는 대부분의 과목이 필기였고 실기시험을 보는 건 예체능 정도였지만 지금 아이들은 대부분의 과목을 학기 내내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실기시험을 치면서 지필고사도 준비하는 셈이니 아무리 봐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보다 (학습량이 아닌) 할 일이 두 배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2~3주에 한번씩 등교를 하니 등교하는 일주일 안에 일정을 다 끝내느라 하루에 많으면 3-4과목씩 수행평가를 봐서, 애들이 등교=수행평가라는 느낌인지 학교 가는 걸 한층 더 괴로워하게 됐다.
지난번에 봤던 중간고사 성적표가 없었다.
요즘은 알리미 앱으로 소위 ‘꼬리표 배부’까지 모두 학부모한테 통지가 와서 성적표 배부날도 당연히 알림이 올 텐데 하고 기다렸는데 나중에 보니 이마저도 1학기 성적을 한번에 통째로 산출하는 모양.(어쩐지 근처 중학교 중에 중간고사가 아예 없는 학교도 있더라니. 그 학교 애들은 한 한기에 기말고사만 봐서 시험 기간에 범위 때문에 멘붕이라고…)
그렇게 교육열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이 걱정(!)돼서 줄 세우기를 줄였으면 대입도 그 방법과 무관하거나 아니면 대학이 가장 중요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앞뒤가 맞을텐데 대학을 가지 않으면 그 뒤 진로 정하기가 더 어렵고 대학을 가려면 어차피 수능은 봐야 한다.
중고등학교 내내 도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동영상 찍기 등등으로 수행평가를 방어하면서 필기시험도 준비하는 게 무슨 해결법이었나 싶다. 더 무서운 점은 이게 올해 중2의 기준일 뿐 작년이 달랐을 수도 있고 내년이 또 다를 수 있다.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디어 같은 데서 입시나 공부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학교 다녔던 시절만 기준으로 삼고 이런저런 판단을 했었는데 막상 정말로 겪어보니 그 사이에 시스템이 많이 괴랄해져 있어서 아이들이 누덕누덕한 제도 안에서 고생하는 걸 보면 입맛이 쓰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갑자기 시험 일정이 불쑥 2주 밀리는 경우도 있고(중간고사 때 인근 학교 한군데가 그랬음) 혹은 학생이나 가족이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면 시험을 보러 갈 수가 없어서(추가시험 같은 것 없음)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혹시 나나 옆사람 때문에 애가 시험을 못 보면 안되니 꼼짝도 못하고(안그래도 린양 반에 어제 등교 못한 아이가 있다고..;) 학교 알리미앱이 울릴 때마다 혹시 뭐 안 좋은 소식인가 걱정하며 열어보는 나날이었는데 이것도 코로나 때문에 겪은 스트레스 중 하나 아닐까. 무사히 시험 일정이 끝나니 나도 덩달아 한숨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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