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왠지 저 정도까지 반응을 보이면 기분이 나쁠지도…==

이 작품을 한마디로 하자면, ‘잔혹개그‘가 아닐까 합니다.
극의 설정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쩐지 섬뜩한데 그 극 속의 등장인물들은 전~혀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꿋꿋하게 극을 이끌어나가,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그런 면에서 이 작가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그다지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봤던 이 사람의 단편집, 「카오루씨의 귀향」에서도 ‘인간과 요괴가 같이 사는 세계‘라는 설정 하에 너무나 말이 안되는 이야기는 담담하게 당연한 듯 이야기했었더랬습니다만…
이 「치키타 GUGU」역시 그런 맥락을 잇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 「치키타 GUGU」는 주인공 소년의 이름입니다. 이 치키타는 어린 시절,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옆집에서 길러졌는데, 어느 날 예전에 살던 집에 돌아와보니 치키타의 친척이라고 말하는 라 라르 데라르라는 여자가 치키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밥을 주니 별 불만없이 그 여자와 살기로 결심한(–) 치키타.

그러나… 뭔가가 이상합니다. 다음날에는 모르는 남자가 그의 밥을 차려줍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역시 이 사람도 라 라르 데라르, 그 다음날에는 작은 소년이 밥을 차려줍니다. 이 사람 역시 라 라르 데라르. 알고보니 이 라 라르 데라르는 변신 가능한 식인 요괴였던 겁니다. 게다가 심지어 이 데라르가 바로 치키타의 가족들을 잡아먹은 장본인인데…

그렇지요. 이왕 먹힐 거라면 양질의 맛으로… (응?)

그렇다면 어째서 치키타는 데라르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바로 치키타가 너무너무 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데라르의 증언대로라면 치키타의 부모님은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는데(;;;) 치키나는 거의 맛이 ‘독‘ 수준. 데라르는 치키타를 먹으려다가 위를 버려 인간 고기를 잘 못먹게 되었고, 그 후에도 극이 진행되면서 나오는 요괴들은 치키타의 피나 땀 한방울로 죽어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이런 맛없는 치키타를 데라르가 밥을 먹이며 사육(?)하는 이유는, 이런 맛이 없는 인간이 100년이 지나면 세상에서 다시 없는 최고의 맛을 지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 공포에 떨던 치키타는 100년이라는 기한(사실 100년이면 살 만큼은 산 것이지 않은가..–;)을 듣고 ‘밥도 해주는데 이왕이면…‘이라는 심정으로 그냥 사육 당하기로 하는 거죠. ^^;

그리고 이런 설정에서 당연히 진행되는 방향이겠지만, 비록 치키타를 잡아먹겠다는 명목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그를 사육하는(?) 데라르와 오히려 치키타에게 해를 입히는 인간들이 대비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동기가 불순하더라도 차라리 데라르 쪽에 마음이 가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1권 마지막 부분에서는 인간을 먹는 인간, 클리프까지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주인공 치키타는 100년 후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뭐, 100년이란 긴 시간 아니겠습니까.

실제 이런 일이 있다면 잔혹하기 그지없겠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체로 이런 장면을 연출하면 보는 사람으로서는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

이 책은 예전에 지현님이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설정을 보면서 ‘꽤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가 마침 라이센스가 발매되었길래 별 고민 없이 집어왔습니다. 보고나니 ‘역시 토노…‘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슥슥 그린 것 같지만 균형이 잘 맞는 귀염성 있는 그림체도 마음에 들지만, 이 작가의 가장 큰 강점은 황당한 설정을 과장되지 않게 끌고 나가는 이야기 솜씨인 듯 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몰입하고 웃을 수 있게 만들어주죠.
제가 본 이 사람의 작품은 우연히도 모두 요괴와 인간의 공존을 소재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인간이 나쁘다, 요괴가 나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요괴가 너무나 당연한 듯 공존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을 그립니다. 보고 있자면 현실에서도 왠지 있을 법하게 느껴질 정도로 능청스럽게 말이지요. 그래서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내 곁에 있는 친구가 의심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만… ^^


드디어 치키타 구구 2권이 나왔습니다.
1권의 마지막에서 등장한 인간을 먹는 인간 클리프와 그가 갖고 다니는 지팡이 오르그가 역시나 무언가가 있었더군요. 1권보다 좀 더 무겁지만, 보다 진지해진 내용입니다.
치키타 구구는 무언가 이야기 속의 감정의 흐름들이 세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괴들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드는데, 천을 먹는 곰 샤르본느나 백년 계획을 했지만 종국에는 클리프를 먹지 못하고 스스로를 봉인한 요르그 등 이들은 인간에게 직설적으로 애교를 피우고(비록 육성계획의 일환이지만) 자신들이 생존을 위해 인간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솔직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이 생기면 스스로 인간을 먹는 것을 중단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 그만 살고 싶어‘라고 느끼면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 역시 어쩐지 슬프지만 참으로 담백했습니다. 읽을 때는 순간순간의 개그에 ‘웃으면서‘ 보지만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짠하게 저려오더군요.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은 과연 어떻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2권의 백미는 다양한 버전으로 변신(심지어 문어로도…;)하는 라 라므 데라르가 아닐까 하는군요. –;


[치키타 구구 3]
어른이 없는 나라.
이 치키타 구구의 세계에는 어른들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피터팬의 네버랜드처럼 아이들끼리 모여 스스로 ‘살아 나갑니다‘. ‘나이를 먹은 인간‘은 존재하지만 이 치키타 일행에게 무언가 사람으로서의 그 무언가를 가르쳐줄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인 줄 알았던 니켈이 여자아이였고, 게다가 이런저런 풍파가 겪었다는 것에 가슴 깊이 동정하면서, 그런 풍파의 원인인 키사스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이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도 그들에게 어른답게 ‘가르쳐준 것‘이 없었다는 것을 읽는 사람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권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잔혹하지만 한층 더 라 라르 데라므의 마스코트화가 강렬해졌고(무슨 탕파처럼 체온조절을 하는 것에서 감동…;) 여전히 ‘식인‘ 이야기에 이번에는 ‘근친상간‘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묘한 감정의 곡선을 그리며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치키타 구구 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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