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아이를 키우다보면 버리려다 멈칫하게 되는 물건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아이가 맨 처음 썼던 속싸개와 배냇저고리, 우주복 한 벌, 처음으로 선물 받았던 미키하우스의 신발 한 켤레를 보관해뒀는데, 처음 아이를 집에 데려왔을 때, 처음으로 애를 데리고 외출을 해야 했을 때 우리 부부 둘 다 어쩔 줄 모르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서 차마 정리할 수 없었다.

지금은 린양이 중3이니 이제 대부분의 것들은 정리했는데 남은 중에 가장 덩치가 크고 더 이상 집에 두자니 너무 비효율적이라 드디어 처리할 마음먹은 게 바로 이 이케아의 계란 의자.

일본에 이케아가 생기고 처음 갔을 때 거기에 꾸며둔 아이 방 데코를 보다가 이 의자에 완전히 꽂혀서, 언젠가 내 아이가 저기 앉아서 빙글빙글 돌고 앉아서 책을 읽고 커버를 내리면서 숨는 걸 상상하며 아이를 낳으면 이 의자를 꼭 사줘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귀국 일정이 잡혔었다.
마지막으로 이케아에 들른 날, 3개월 된 린양을 앞에 안고 굳이굳이 저 의자를 사서 렌트한 SUV에 넣으려고 하니 옆사람이 이게 그렇게 꼭 필요한가, 하는 눈으로 봤지만 그래도 별 말 없이 차에 실어주고 짐을 부쳐줘서 바다 건너 온 물건.

그래서 린양이 이 의자를 좋아했는가 하면…

아이들이 보통 그렇듯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 집에 온 어린이 손님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지만 정작 린양은 어릴 때 저 의자에 그렇게 큰 흥미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이번 집에 올 때도 가지고 들어와서 중3이 될 때까지 뒀으니 저 의자의 대상연령대를 한참 넘긴 셈. 최근에는 가뜩이나 공간도 없으니 저 위에 옷가지를 말도 못하게 쌓아놔서 드디어 정리할 때가 왔구나 했다. 😑

상태가 너무 멀쩡한데(린양이 책이든 장난감이든 곱게 사용하는 편이라) 그냥 딱지 붙여 버리자니 아쉽고, 당근 거래는 안 하고, 가까운 거리에 저 의자를 쓸만한 아이가 있는 집이 생각나서 물어보니 다행히 가져가시겠다고 해서 오늘 그 집으로 보냈다.

시절이 이래서 무슨 당근 거래하듯 차에 의자 휙 싣고 간단히 안부만 묻고 서둘러 헤어졌는데, 그래도 또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 짧게라도 대화하니 반갑고 좋더라.

새 의자 주인은 많이 좋아해주길. 🙏


새 주인은 잘 쓰고 있다는 기쁜 소식. 💌

내가 생각한 모든 걸 한 큐에. 👍

by

/

2 responses

  1. Tom

    우리집에도 그런 물건 있어. 자네가 어렵사리 구해줬던 지지 인형 배낭. ^^;
    너무나도 귀여울 같아 굳이 부탁해가며 손에 넣었건만 1호기는 딱 한 번 매 보고 거부, 그대로 옷장행이었지. ㅋㅋㅋ

    1. Ritz

      앗, 그 인형 가방 나도 기억하는데.
      애들 마음은 정말 마음대로 안 돼요.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