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책을 내다보면 모든 책에 고르게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만드는 것도 어찌됐든 사람인지라 좋아서 한번 더 손보게 되는 책이 있는 반면에 속 썩이면 무지 짜증나는 작품이 있다.
예를 들면 판매고가 그닥 좋지 않은 책인데 홈페이지에서 독자들이 ‘후속편도 내달라‘고 아우성이면 정말로 왕.짜.증이다.(니들이 창고에 쌓일 그 책 다 시내 한복판에서 팔아줄거냐)
혹은 일본에서 표지, 판권장 컨펌 중에 사소한 걸로 크레임을 걸면 그럴 때도 왕 짜증이다.(안 팔리는 책에 지금 기름 붓냐)

이번에 클랜 3권의 경우는 맨 처음에 표지와 판권장을 보냈더니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이름의 위치를 다시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처음 작업시에는 NT Novel 로고가 오른쪽 하단에 있고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이름은 왼쪽 하단에 자리했는데,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오른쪽 아래에 있었던 이노마타 무츠미의 사인이었다.
이럴 경우 일반적으로 다른 출판사의 경우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이 가리지 않도록 재작업 요망‘이라고 하는데, 이 슈에이샤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아주- 상세하게 지시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의 이름은 ‘원본과 같은 위치‘에 넣고 글자 가장자리에 ‘흰 테두리‘를 두를 것, 브랜드 로고는 왼쪽 아래로.
시키는 대로 하고 보니, 이거 정말 찐따같은 거다. 원본에서야 작가 이름이나 일러스트레이터 이름이 한문으로만 들어가니까 백작의 망토 한가운데 글자가 걸려있어도 ‘나름대로‘ 스타일리쉬라고 봐주겠지만, 우리나라판의 경우는 가뜩이나 슈에이샤 요구대로 지켜주느라 한글에 영문에 주절주절 적어놨는데 그걸 저 망토 위에 걸쳐놓으면… 바보된다.

국제부는 왠만하면 슈에이샤의 요구에 대해서는 토씨다는 걸 싫어해서(건의를 해서 수렴된 적이 없댄다) 그냥 가려고도 했지만, 정말 그렇게 냈다가는 인쇄 사고라고 오해받을 것 같기에 일단 양쪽 다 작업을 한 후 국제부에 내려보내며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국제부도 눈이 있으니 보고 좀 심난하긴 했던 모양. -_-;
이거 안 된다고 하면 일본 발송용으로 따로라도 찍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며칠 뒤에 일본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라는 답신이 왔다(니들도 눈이 있겠지). 국제부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놀랐다. -_-;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오게 된 클랜 3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철두철미한 본전 정신으로 책을 고르는지 얇은 책은 안 팔린다. 책 분량이 형편없다보니 자연히 안 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간혹가다 스케줄 조정할 때 마땅한 작품이 없으면 슬쩍슬쩍 한권씩 내는 식으로 진행을 하고 있다. 내용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내 기준에서는 대디페이스보다 이 책이 굳이 떨어진다고 보진 않는다.
이번 권에서도 여전히 무난무난하게 이야기는 넘어가며, 오버나 과장된 면 없이 그냥 술술 읽을 수 있다. 일단 토라노스케의 멤버들은 모두 조를 짜서 흩어져 백작에게 대응할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하고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일단 다음권에서 어찌될 지 궁금하기도 하다(이 정도면 준수하지 않은가).

역시 볼만한 건 이노마타 무츠미의 일러스트. 아무래도 전격 계열의 일러스트들이 가볍기 때문에 요즘에는 이런 무게감 있는 쪽에 더 마음이 가는 편이다. 내지의 각 장 표지 일러스트들도 슥슥 쉽게 그린 듯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게 역시 대가다웠다.

엽기스러운 건 후속권 오퍼를 위해 조사해보니 5권부터 작가가 또 바뀐다. 당당하게 릴레이 어쩌고 하는데 책 내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입만 쩌억 벌릴 따름.
팀장님과도 잠시 한 이야기지만 혹시 다나카 요시키가 슈에이샤와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나간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멋대로 해봤다. -_-;

멀쩡한 표지를
이런 식으로 만들라니
아주 장사하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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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sponses

  1. 리츠코

    뭐 5권에서 바뀔 때였던가 아예 ‘릴레이‘ 어쩌고 라고 공식 발표를 했으니 계속 바뀔지도…-_-;;(라지만 대체 몇권을 가려고?)

  2. 장미의신부

    7권에서 작가가 또(…) 바뀌었던데요. (이로서 4명인건가…정말 릴레이를 할 생각인 건지도…-_-;)

  3. 룬그리져

    …그런데, 진짜 찐따같은데요.(…;;)

  4. 리츠코

    저는 이번 3권 후기에서 ‘백작이 컵라면 먹는 장면이 나오기 전에 맛있는 걸 사줘요‘에서 결정적으로 잘린 게 아닐까 싶더군요. -_-;

  5. siva

    …라기보다 대접이 하도 부실해서 후기에다 툴툴거린 게 아닐까도 싶던데요 전.(…) 박카스를 얼마나 싸구려로 사다줬기에 저럴까 싶기도 하고.(…) 아무리 신진이라고 해도 정식으로 글을 쓰는 프로작가인데 아무리 한 쪽이 ‘대선생님‘이라고 저렇게 고스트라이터처럼 부려먹어도 되는 건가 싶구요.(…)

    씨뿌린 애비와 낳은 애미와 양부모 모두로부터 냉대받는 자식이라는 느낌입니다.(…)

  6. 리츠코

    슈에이샤 편집부가 작가 관리를 잘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작가 후기에서 이노무 작가가 맨날 ‘경험에 필요하니 비싼 거 먹여달라‘고 하는 걸 봐서는 눈밖에 나서 잘린 게 아닐까도 싶음.-_-;;

  7. 미사

    그 작가 잘 쓰더만 또 웬 교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