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기내식으로 나왔던 정체불명의 과자.

이른 시간에 비행기가 있기에 UA로 비행기편을 잡았는데, 어이없게도 아침부터 내린 폭설로 비행기가 자그마치 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습니다(아침에 미친듯이 내리는 눈을 보고 비행기 못 뜰 줄 알았음). 결국 일본에 떨어진 시간은 거의 3시경.

입국 심사를 하면서 지난번 오사카 여행때의 사건이 생각나 은근히 불길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걸렸습니다. -.ㅜ 여권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길래 주민등록증을 자진납세(…)했더니 그걸 보고서도 계속 갸우뚱 갸우뚱 하더니만 결국은 잠시 사무실로 부르더군요. 오사카는 관광도시라서 그런지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일본어로 밀더이다. -_-; 그래도 지난번에 입국한 기록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훨씬 간단하게 조회하고 같이 온 일행이나 가져온 현금 액수 등을 물어보고는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의 세계 날씨에서 미리 본 도쿄는 그다지 기온이 낮지 않았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생각보다 춥더군요. 봄옷차림으로 가볍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3박 4일 내내 제법 추웠던 데다가 눈도 내렸습니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첫날 스케줄은 거의 다 쫑나고 서둘러 숙소로 가서 짐부터 풀기로 하고 이케부쿠로로 향했습니다. 이전에 왔을 때는 우에노나 신주쿠 쪽에서 묵었었는데 의외로 이케부쿠로쪽이 머무는 기간 동안 여기저기 이동하기에는 꽤 편했습니다. 숙소 위치도 역과 가까운 편이고 무엇보다 백화점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볼 거리가 많아서 좋더군요.

이번 여행에서는 일행 구성상 싱글 룸에서 여유있게 굴러다닐 수 있었는데 방도 깨끗하고 시설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단지 2인용도 3인용도 모두 같은 평수의 방에 침대만 늘어나는 구성(…)인 곳이라 괴수와 jjaya 선배가 쓰는 방보다 더 편한다는 이점도 있긴 했네요. 짐 풀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6시를 훌쩍 넘겼더군요. 결국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나와 저녁을 먹으러 향했습니다.

평소 두 사람이 일본에 가면 정말 맛있는 라면 집이 있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는 곳이 있었는데, 가보니 정말로 제대로 맛을 내는 집이더군요.
국물도 엄청나게 진한 데다가 라면 안에 들어간 고기는 또 어쩜 그렇게 기간이 잘 배었는지 고기 비계 부분이 쫄깃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시켰던 라면도 맛있었지만 선배와 승현씨가 시켰던 매운 맛 라면은 매운 맛과 일본 라면 특유의 찐한 국물이 어우러져서 정말로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 최고로 맛있었습니다(게다가 그 퍼펙트한 계란 반숙이라니).

위치는 선샤인시티 있는 번화가 골목 가운데쯤에 보면 히카리쵸라는 좁은 골목이 있는데, 그 히카리쵸 골목 입구 뒤를 보면 ‘라면명작좌’라는 간판이 멀리에 보입니다. 그 끝쪽에 있는 집이네요.

식사 후 괴수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따로 행동하기로 하고 선배와 저는 이케부쿠로의 극장에서 하고 있는 Air 극장판을 보러 갔습니다.(…) 마침 마지막 시간 상영이 딱 남아 있었던 데다가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고, 그렇다고 뭘 하기도 애매해서 보기로 했는데 저야 어차피 작품에 대해 전혀 모르고 무작정 따라갔던 셈이었습니다만 내용은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보고도 별 무리가 없었으니 그만하면 각본은 나쁘지 않았고 단지 애니메이션 자체 퀄리티는 극장판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엄청나게 나쁘더군요. 감독이 데자키 오사무라더니 로맨스 물 중간중간에도 그 화면 정지하면서 연필화가 뜨는 연출이 퍽퍽 등장해서 좀 개그였습니다.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극장 안에 사람은 한 20명 정도였는데, 여자는 저 빼고 한 2명 정도. 나머지는 정말로 모두 비슷한 인상(…)이더군요. 게다가 정말로 무서웠던 건 영화 종반부에 히로인이 죽는 장면이 나오자 등 뒤에서는 끊임없이 ‘훌쩍훌쩍’ 소리가 들려왔다는 사실(저한테 Air는 연애물이 아니라 호러물로 기억에 남을 듯). 이게 정말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으면 십분 이해를 하겠는데, 작품 퀄리티가 워낙 바닥을 벅벅 기어서 히로인이 잠옷바람으로 남자 주인공과 엄마를 향해 걸어가는데 정말로 무슨 사다코처럼 보여서 감동 이전에 ‘저렇게 다가오면 진짜 무섭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는 여전히 훌쩍훌쩍.
Air의 팬인 선배도 혹시? 싶어 옆을 보니 선배는 무언가 이미 얼굴 가득 좌절이 피어올라 있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선배가 ‘영화에서는 원작의 20퍼센트도 못 나왔어’ 라고 말하며 나가는데 등 뒤에서 우리 뒤에 앉았던 그 ‘훌쩍훌쩍’ 일파가 ’20퍼센트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도 한국인이었다는 이야기.
바다 건너와서 좋아하는 작품을 보고 울고 갈 수 있었으니 그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했을 겁니다.(…) 다만 저와 함께 본 선배는 팬임에도 그 퀄리티에 분노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좌절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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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responses

  1. 리츠코

    롯>아니 대체 내 나이의 여자가 뭔 나쁜 짓을 했길래 저렇게 국제적으로 쫓기나 몰라. -.ㅜ 부디 계속 도주만 하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네.

  2. 그녀는 여전히 훌륭히 도주중인가 부지. 능력있는 그녀일쎄.

  3. jjaya

    어메식님>나중에 극장판 보시면 아십니다(…) 데자키 감독이 이렇게까지 배신할 줄이야… 흑흑 ㅠㅠ

  4. 리츠코

    어메식>좌절과 분노로 잠시 눈물이 맺힌 듯도 하더이다…(그날의 선배의 좌절은 정말 옆에서 보는 사람이 딱할 정도였던지라. -_-;)

  5. …히로인이 죽을 때 jjaya님 눈에 눈물은 안 맺히셨던가요? (…)

  6. 리츠코

    Dino>좁은 영화관 안에서 정말 링보다도 무섭더군요. –;
    슈바르츠>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좀 신파고(무엇보다 그 여자 캐릭터가 여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보기 괴로웠군요) 팬들이 보기에는 부족하니 결국 그다지 잘 된 작품은 아닌 듯해요.
    장미의신부>저도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새의 노래는 좋더라구요. 초반에 그 노래와 함께 영화 짠~ 시작할 때는 나름 괜찮아 보였는데 말이지요…=_=;

  7. 장미의신부

    아, 그리고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지만(리츠코님 죄송~), 미사님 홈페이지가 사라져서…(쿨럭)
    미사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카드는 게을러서 못보낸 관계로 amin의 Birthday Card 라는 곡으로 대신 축하를…^^;
    http://user.chol.com/~ksj450/mp3/birthdaycard.mp3
    겸사겸사, 헤비의 결혼축하노래도…(스가이 에리의 ‘결혼축가~Dear My
    Friends~’라는 곡입니다)
    http://user.chol.com/~ksj450/mp3/ketkon.mp3

  8. 장미의신부

    게임 자체에는 별 관심없습니다만(순애물은 취향이 아니라…-_-;) ‘새의 노래’만큼은 좋아하는군요. 동인계 가수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입문할 수 없다는 규칙이라도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별의별 사람들이 다 부르고 있던데…뭐, 그래봐야 역시 오리지널만한 곡은 없는 듯. ^^; 카와이 에리가 부른 이번 극장판 이미지송도 좋더군요.

  9. 잘 다녀오셨습니까~

    기존 팬들에게는 평이 안 좋지만, 스토리를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 좋게 각색은 잘 한 것 같더군요;
    하지만 보는 사람은 90% 이상이 오타쿠뿐이니…orz

  10. 훌쩍훌쩍이라니;; 무서운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