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전철역에서 교토에서 ‘알퐁스 뮈샤(Alphonse Mucha)전’을 한다는 팸플릿을 보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화가라 ‘이건 꼭 보고 말테다!’하고 별렀다가 마지막날 교토역에 짐을 맡겨두고 난 후 보러 갔었습니다. 마침 장소가 교토역에 있는 이세탄 백화점 안의 미술관이었거든요.

당연히 별의 별 기념품이 넘쳐났는데 짐을 더 늘리기도 애매해서 기념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으로 엽서만 세 장 사왔습니다.
가장 왼쪽의 그림은 웹에서 볼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 어찌나 고운지(?) 기념으로 한 장 샀습니다.
복제화들을 그럭저럭 싼 가격에 팔고 있어서 좀 탐나긴 했는데 집까지 들고올 생각을 하니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패스..;

뮈샤의 활동 영역이 포스터, 장식판넬, 달력, 행사용 인쇄물, 잡지표지, 삽화 등 다양하다보니 실제 그림 크기들도 큼직큼직해서 웹에서 그림 파일로 보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박력있고 우아하더군요.
전시관은 그의 작품을 시대별로 파트를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초창기 사라 베르나르를 그린 극장 포스터들과 그 즈음이 가장 뮈샤답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이 좀더 섬세해지는 대신 제가 좋아하는 뮈샤 특유의 선이 굵고 또렷한 맛은 좀 사라졌더라구요.
그의 다양한 연작 시리즈들을 한 자리에서 모아서 볼 수 있었던 건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백화점 안의 전시회쯤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관람객도 엄청나게 많고 연령층도 다양한데다 전시회 규모도 상당히 커서 놀랐네요.

뮈샤전을 본 후 이동한 곳은 킨카쿠지.
교토역 앞에서는 각 유명 관광지로 이동하는 버스가 다닙니다. 여기저기 많이 보러 다닐 예정이면 일일 승차권을 끊는 것도 경제적일 것 같네요.
버스는 우리나라처럼 길 건너편에 반대편으로 정류장이 있는 방식도 있긴 하지만 그냥 순환하는 버스도 많으니 잘 알아보고 타야 합니다.

킨카쿠지의 입장권은 이런 부적 모양입니다. : )
1397년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지은 별장인 키타야마덴을 그가 죽은 뒤 로쿠온지로 개칭하였습니다.
저 번쩍이는 금박의 킨카쿠(金閣)-석가모니의 유골을 모셨다네요-때문에 킨카쿠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만…
이 3층짜리 누각은 층마다 다른 건축 양식으로 제작되었는데, 1층은 헤이안 시대의 귀족 건축 양식, 2층은 무로마치 시대의 무가식(武家式) 전통, 3층은 중국식 선종 사원 양식 이라고 합니다.
실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_-;(역시 이런 건 아는 만큼 보인달까…-_-)
저는 정면보다 이상하게 이쪽이 더 좋더라구요.
저 배가 띄워져 있는 게 호젓해 보여 마음에 든달까…
다실풍 구조의 정자 셋카테이. 여기에서 보는 석양이 그렇게 아름답다네요.
그래서 이름도 夕佳亭 입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이젠 킨카쿠지 포스팅에 해둔 적이 있어서 생략.
후도도(不動堂).
이곳의 본존 이시후도묘오(石不動明王)은 고보 대사의 작품으로 전해진다네요.
교토에 온 김에 기념으로 사본 요지야의 기름종이.
키요미즈데라 쪽에서 놓쳐서 킨카쿠지 들어가는 초입에 보이길래 들어가봤는데 손님이 북적북적하더라구요.

킨카쿠지에서 나와 향한 곳은 료안지였습니다.
지도에 보니 킨카쿠지 근처인 것처럼 되어 있어서 그냥 걷기 시작했는데 중간의 표지판을 보니 1.3km 정도 거리더군요.

이 킨카쿠지에서 료안지를 거쳐 닌나지로 향하는 길은 키누카케노미치-흰 비단이 깔렸던 길-이라고 한다는데 이 이름은 우다 천황이 한 여름에 설경이 보고 싶어서(-_-) 기누가사산에 흰 명주를 걸게 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동차와 버스가 다니는 평범한 길로 특별히 볼 건 없었어요. 왠만하면 그냥 버스 타셔도 될 듯.

료안지는 1450년 일본 중세 때의 무인 호소카와 가츠모토가 도쿠다이지 집안의 별장을 양도받아 세운 선종 사찰로, 앞뜰에 흰 모래를 깔고 크고 작은 15개의 돌을 배치한 가레산스이식 정원이 유명합니다.
이 가레산스이(枯山水)식이라는 게 뭔지 찾아보니 물을 사용하지 않은 정원, 즉 나무를 심어놓은 정원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얀 모래 공간을 조성해 놓은 사원의 정원에 한해서 일컫는 말이라네요.

대청마루에 앉아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킨카쿠지의 휘번쩍한 금박을 본 후 이곳에 앉아서 정원을 보고 있자면 그 단아한 분위기에서’아, 이게 선(禪)이구나’ 하고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대나무숲은 킨카쿠지보다 이곳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더군요. 저는 양쪽 다 그 나름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이것이 유명한 정원.
모두 15개의 돌이 있는데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한 개는 반드시 가려서 안 보인다고 합니다.
이것은 충분치 않더라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표현한 것이라네요.
주변에 물결처럼 긁은 무늬가 독특하지요.
민둥산과 물 마른 강바닥을 그렸던 중국 수묵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내부 벽에 그려진 그림도 멋지더군요.
뒤쪽으로 돌아가면 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레산스이식과는 정반대의, 물기를 잔뜩 머금은 이끼 정원이 펼쳐집니다.
이끼가 꼭 융단처럼 펼쳐져 있지요. : )
북동쪽에는 손 씻는 나지막한 물그릇인 츠쿠바이가 있습니다.
엽전의 구멍인 가운데의 네모 모양은 한자의 ‘입 구(口)자’를 나타내고 여기에 맨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나 오(吾)’, ‘오직 유(唯)’, ‘만족할 족(足)’, ‘알 지(知)’를 붙이면 선(禪) 사상의 중요한 정신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연못 교요치(鏡容池)
연못가에 피어 있던 피안화

료안지를 마지막으로 저희 일정은 모두 끝났습니다.
보통 좀더 가면 있는 닌나지까지 본다는데 여행 내내 어찌나 날씨가 쨍하게 더웠는지 둘 다 이쯤에서 다음을 기약하자, 하고 교토역으로 돌아왔네요.

내 발로 마음 닿는대로 걸어다니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건 2년 전에 패키지 여행으로 갔을 때와는 확실히 차이가 컸습니다(물론 그때가 몸은 더 편했지만. ^^). 볼 수 있는 것도 느끼는 것도 무한했거든요.
특별히 일정을 짜지 않고 가이드북 한권 달랑 들고 출발한 것 치고는 그럭저럭 가볼 곳은 가본 것 같아 그 역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 )

오사카는 두번 가보고 나니 더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교토는 꼭 다시 한번 가서 못가본 곳들을 좀더 둘러보고 싶네요.

ps. 둘 다 사진찍는 걸 안 좋아해서 별로 안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추려보니 생각보다 꽤 되더군요. 근래의 모습이 궁금하신 분(이 계시려나? -_-)은 http://utena.tistory.com/ 포스팅 패스워드 tea-leaf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2 responses

  1. 으. 저도 가보고 싶어지네요 orz

    1. 리츠코

      디노님도 다음번에는 칸사이 쪽으로 돌아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