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원제에 비해 제목이 좀 심심한 책.

나같으면 ‘그 X들’이라고 붙였을 것 같다.(X에 뭐가 들어가는지는 상상에 맡길 수 있으니)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다윈의 성에 대한 견고한 이원적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수십 종의 암컷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성은 흑백으로만 따질 수 없는 현상이며 회색 지대를 이상체, 더 나쁘게는 병적인 것으로 낙인찍는 것은 다양성이라는 자연의 기능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행동이다.

p.422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450여페이지 내내 음경, 생식, 교미 등등의 단어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그것이 어떤 성적인 자극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거대한 세상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오만하게도 일개 한 종에 불과한 인간이 생각하는 기준을 자연의 구성원에게 주저없이 들이대고 그 안에서 시야가 좁은 결과물을 도출해오지 않았는지.

편협하지만 대단히 영향력 있는 다윈의 태도로 인해 이후 130년 동안 동성 경쟁의 연구는 짝을 두고 벌이는 수컷의 경쟁에만 초점을 맞췄고, 암컷의 전투적 잠재력은 대개 무시되었다

p.266

성적으로 거리낌 없는 명금류 암컷은 행동생태학계를 뒤흔든 ‘일처다부제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암컷은 수컷에게 빼앗긴 성적 운명의 통계 권과 알의 친자 결정권을 되찾기 시작했다. DNA 검사 기술로 도마뱀에서 뱀, 바닷가재까지 다른 암컷들의 정절이 속속 철회되었다.

p.122

적극적인 수컷, 수동적인 암컷이라는 공식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전반적인 느낌은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 그 자체이며 “진화야.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니?”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생김새다.

p.79

일지도.
한가한 주말 낮 시간에 티비에서 보던 동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미와 새끼의 애절한 장면에 감동받던 것이 생각나며 그것이 얼마나 ‘인간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였는지 새삼스러워진다.

지금도 여성에게 강요되고 있는 ‘모성’이란 넓은 자연의 시야에서 보자면

엘트먼은 영장류에게 모성이란 양육에 대한 무릎반사는 보편적 반응이 아니라 위험천만한 줄타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중요한 거래를 협상해야 하는 사느냐 죽느나의 다채로운 직무임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p.28

다원의 모성 본능은 우리 모두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것은 여성에게만 제한된 것도 아니고, 저 위대한 인물이 믿게 한 것처럼 즉각적이지도 않으며 모두가 아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요령을 배울 때는 깨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아기 걸음처럼 나아간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동료 생물을 ‘다정함과 덜 이기적인 마음으로 돌보는 기회’를 준다.

p.256

남녀가 종의 생존(?)을 위해 함께 힘을 합쳐야 할 거대한 ‘다정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곤충에서 시작해서 온갖 종의 암컷에 대한 이야기라 단숨에 다 읽기는 좀 버거웠지만 다 읽고 나니 생태계에 대한 별별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즐거웠다.(내가 언제 이렇게 많은 종의 번식 형태에 대해 알 일이 있겠는가)

읽다보면 나오는 동물, 곤충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감이 안 오는 점이 좀 아쉬운데(종류가 너무 많아서 다 찾아볼 수도 없다;;) 그 중에 드물게 나가사키 바이오 파크에 갔을 때 봤던 벌거숭이 두더지쥐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반가웠다. 정말 어떻게 저렇게 생긴 동물이 있지,(이것도 인간인 내 주관적인 관점일 뿐이지만) 했는데 그 생태도 의외로 복잡하고 특이해서 저 동물원에 있는 개체들은 그 본능을 제대로 충족시키며 살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저 바이오파크는 자연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제와서 좀 궁금해졌다.

새에 대한 챕터는 넷플릭스의 ‘새들과 함께 춤을🔗‘을 함께 보는 걸 추천.

+중간에 등장하는 흰동가리(니모)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실제 흰동가리는 수컷이 알을 보호하고 암컷이 영역을 사수하는데 예를 들어 그러다 암컷이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하게 되면 수컷 흰동가리가 암컷으로 변하고 보호하던 중 어린 수컷 하나가 성숙하여 그 짝이 된다고.

즉 ‘니모를 찾아서’를 생물학적으로 정확히 묘사하자면 니모의 아빠가 암컷이 된 다음 니모와 성관계를 하게 되며 디즈니 시청자는 절대 볼 수 없는 영역의 작품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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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저도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둔 거라, 반가운 마음으로 이 포스트를 읽었어요. 인간의 오만한 기준이라는 표현이 여기에서도 나오는군요. 해충과 익충, 유해조수 같은 표현들이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고 심지어 낙인 찍은 종을 ‘죽일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하는 것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넓게 보면 결국 인간이 제일 해로운(!) ㅎㅎㅎㅎㅎ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감상문 읽고 나니, 더더욱 이 책에 대한 흥미가 동합니다.

    1. Ritz

      인간이 오만한데 여기에서는 남자가 특히 오만해서 아주 대환장 파티예요. ㅋㅋ

      작가가 정말 많은 곳을 발로 뛰며 준비한 책이었어요.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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