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올 여름 열리는 전시회 중에 고갱전과 무하전은 꼭 챙겨보리라 결심했었는데 고갱전은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좀 의욕이 떨어져버렸고 이 무하전은 마침 집 가까운 데서 하기도 해서 사람이 더 붐비기 전에 후딱 다녀왔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결정적으로 우연히 오사카 여행 중에 봤던 무하전에서 원화들을 접하고는 웹에서 파일로 보던 것과는 한참 차이가 나는 세련된 색감과 기존에 생각했던 포스터와는 전혀 다른 거의 등신대 사이즈의 그림들을 보면서 한층 좋아하게 되었더랬지요.
무하는 화가라기보다는 거의 전방위 예술가에 가까워서 광고 포스터부터 패키지 디자인, 책 삽화, 연극 무대 디자인부터 보석, 의상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에서 그 특유의 우아함을 마음껏 뽐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엄청나게 성실했던 데다가 거의 일평생을 일에 묻혀 살다시피했고 운좋게도 그에 따르는 부와 명성도 마음껏 누린, 어찌 보면 꽤 복많은(?) 인생을 살다갔지요;(살아 생전에 죽도록 그림이 안 팔려 고생한 화가들이 워낙 많다보니…)

무하 그림이라고 하면 보통 이런 스타일이 유명한데 이건 초기~중기 정도에 상업적인 작업들(포스터나 상품 광고, 패키지 디자인 등등)에 주로 쓰였고 전체로 보면 일반 회화도 꽤 많이 그린 편이었어요. 말년에는 조국으로 돌아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연작 시리즈에 심취하기도 했고…

Song of Bohemia, c.1930 (oil on canvas) by Mucha, Alphonse Marie (1860-1939) 이 그림은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봤는데 색감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더라구요.

예전에는 무하가 그린 작품 중 주로 연극 포스터나 광고 이미지 화풍이 참 좋았더랬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저 사람이 그린 일반 회화쪽에 더 눈이 가네요.

portrait of jaroslava 무하의 딸 야로슬라바의 초상화. 당시로는 좀 늦은, 마흔 중반의 나이에 결혼해 거의 쉰이 다 되어 얻은 첫딸이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예뻤을까요. 이 그림은 전시회 초입에 걸려있는데 실제로 보면 뭔가 더할나위 없이 아련하고 곱게 그려놔서 그야말로 아빠의 눈에 보이는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실물은 이렇게 뚱한 표정으로 안 보이는데. -_-)
Portrait of Mucha’s Son, Jiří 아들 이르지의 초상화. 미소년..?;

이번 전시회는 약 230점이 넘는 작품이 왔다고 합니다.
무하가 소위 ‘대박’이 나는 시작점이 되는 작품인 ‘지스몽다’ 및 유명한 포스터들, 우리가 흔히 봤던 광고 그림들 가짓수도 꽤 됐고 무하가 디자인했던 상품 패키지, 보석 등도 몇점씩 나와있어 볼륨감 있는 전시회였어요. 작업할 때 참고했던 사진들도 꽤 있었는데 전 의외로 이 사진들 보는 재미가 제법 괜찮았네요.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좀 있는 편이었고 관람객의 90프로는 여자였어요..; 한바퀴 다 돌고 웬지 아쉬워서 슬슬 거슬러서 올라가며 그림들을 한번 더 훑고 나왔습니다.
전시회도 전시회지만 판매할 기념품들을 좀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인쇄 색감이 그리 좋지 못한 데다가 눈에 딱 들어오는 게 없어서 전시회 보고 나면 기념 삼아 모으는 마그네틱만 하나 사서 돌아왔군요.

왼쪽부터 고갱, 무하, Luděk Marold(뭐라고 읽는거냐;), 고갱의 애인이었던 안나

안그래도 얼마전에 고갱 전기를 읽으면서 고갱이 무하 작업실에 자주 놀러를 갔다는 이야기를 보고 어? 하고 찾아보니 고갱/고호는 무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고요. -_-; 인생(?)도 화풍도 워낙 서로 다른지라 마치 장르가 다른 두 소설(?)이 크로스하는 느낌이었는데, 어쨌거나 고갱에게 무하는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친구’였던 듯하고 무하에게 고갱은 ‘작업실에 자주 놀러와 빌붙는 친구’ 였을 것 같아요. ^^;
무하에 대해서는 무하 재단 홈페이지에 꽤 정리가 잘 되어 있으니 이쪽으로.
http://www.muchafoundation.org

그림 찾느라 무하 작품들을 둘러보다보니 지난번 오사카 전시회에서 보고 마음에 들었던 이 작품은 이번에 안 왔던 듯하네요. 실물로 보니 참 박력있었는데.

F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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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1. 아으….한국은 왜 도판이 안 좋을까요. 원래 사진이 더 잘 나오잔 않긴 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심해진 듯 하네요..여기도 올라나….

    1. Ritz

      음, 화집을 인쇄하려면 앞에 버릴 종이를 엄청 길게 잡고 색을 맞춰나가면서 봐야하는데 아마 그런 거 없이 바로 찍어서 내다판 게 아닌가 싶어요. 애초에 색이 좀 잘못 잡힌 거 같기도 하고… 기념품샵에서 좀 넘겨봤는데 뭘로 소스를 받은 건가 궁금하네요.

  2. 혹시 화보집이나 카탈로그는 보셨나요? 인쇄가 별로였는지 어떤지 알려주세요…. ㅠ.ㅠ 친구님께 구걸이라도 해봐야 할 거 같아서….

    1. Ritz

      절대, 네버! 사지 마세요. -_- 이번에 저기서 파는 화보집 악명이 자자해요.-_- 색을 단 하나도 맞춘 게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