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지난번에 읽은 ‘진상’ 같은 류의 장편 시리즈인 줄 알고 빌렸는데 단편집이었네요..;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등장하는 장르는 두갈래로 나뉘기 마련이라 ‘그 알 수 없는 현상이 사실은 이러저러한 과학적인 근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라는 식과 ‘실제로 초자연적인 존재가 벌인 일’이라는 전개가 있는데 이 책은 후자로군요. 

이야기에는 ‘정말로’ 둔갑하는 고양이나 이불에 눈이 잔뜩 붙은 괴물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나타난 이유는 보통 인간의 욕심이나 미련 때문이라는, 전반적으로 애잔하고 씁쓸한 느낌의 단편들이었습니다. 중간에 갑자기 이전에 읽은 시리즈에 등장했던 마사고로와 짱구가 등장해서 잠시 반갑기도 했네요. 
제목은 그림자밟기지만 전체 작품 중에서는 내내 분위기가 너무나 음습해서 다 읽고나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훅 나왔던 ‘밤바 빙의’나 마지막의 ‘노즈치의 무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나 노즈치의 무덤 같은 건 영상화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백귀야행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에 맞을 작품이었군요. ^^;

여담이지만 이 출판사 책은 책 끝에 번역자가 아닌 편집자의 후기가 간간히 실리는 듯한데 이게 저는 좀 안 맞았어요.
책이 나오기까지의 뒷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하고 싶었던 듯한데 개인블로그 글이 출판물 뒤에 붙어있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일본의 에도 시대란 어떤 느낌의 어떤 시대였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나 좀 읽기 쉽게 풀어놨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편집자가 일본에서는 인기가 많은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놨던데 제가 보기에는 그냥 단순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에도’라는 시대는 생소하기 때문이겠죠. 보통 일본 소설은 가뜩이나 등장인물 이름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한참인데 툭툭 등장하는 에도 시대의 풍습이나 제도 같은 것까지 더해지면 주석 보면서 그걸 이해한다 쳐도 완전히 소설에 몰입하기 어려우니까 재미도 좀 덜하고요.
국내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팬들은 대개 모방범이나 화차 류의 작품들을 좋아할텐데 이 에도 시리즈들은 확실히 그 작품들과는 분위기나 성격에서 거리가 있죠. 미야베 미유키 팬이라서 이 시리즈를 사서 보게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듯. 

어쨌거나.
저는  이런 분위기의 괴담집을 좋아하는데 근래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도 재미없어진지 한참이고 교고쿠 작품들도 딱히 더 나오는 게 없었던지라 간만에 재미있게 읽었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