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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첫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길고도 장대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서사를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풀어나가는데 그럼에도 책 볼륨이 엄청나서(600페이지가 넘었다…) 절반쯤 오니 ‘내가 이제와서 사피엔스에 대해 이 이상 알아 무엇에 쓸까’ 싶어 확 덮어버리고 싶은 기분을 이겨내고 어쨌거나 완독.

내가 학교에서 배운 ‘진화’가 이런 이미지였다면 요근래 티비의 문화 강연 같은 데서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일렬로 진화했다기보다 진화의 어느 시점에서는 마치 고양이와 삵처럼 비슷한 무리들 중에 어느 한 종이 나머지를 전멸시키고 하나로 나아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여기에도 그 이야기를 꽤 상세히 하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는 건,
자신과 비슷한 속들과의 공존보다 유일한 생존을 택할 정도로 거칠고 이기적인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 대단히 유해한 종으로 지구를 꾸준히 엉망으로 쓰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멸종을 앞당긴다 해도 지구 자체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다음에 올 지구의 새 주인들은 인류가 그렇게 스스로 사라진 걸 감사할지도.

우리는 지금도 역사 시간에 채집에서 농경으로 넘어가는 획기적인 ‘혁명’을 겪으며 발전해왔다고 배우지만 과연 그 농경의 발달이 인간에게 정말 ‘유익한’ 것이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는 시작이 재미있어서 결국 끝까지 읽지 않았나 싶다.

정초부터 전인류적(?)인 고민을 깊어지게 하는 책.
이 다음은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인가본데 검색해보니 이 사람이 쓴 ‘극한의 경험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가 눈에 들어와서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전쟁 문화사는 어떤 것일지 궁금해 이것부터 대여할까 싶다.

사피엔스가 도착한지 2천 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유일무이한 종 대부분이 사라졌다. (중략) 북미에서 대형동물 47속 중 34속이 사라졌다. 남미에서는 60속 중 50속이 사라졌다.

더구나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중략)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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