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아쉬운대로 사진으로.
원래는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한권짜리였을 듯

두꺼웠던 엘리자베스 여왕 이야기를 끝내고 미사언니의 추천으로 일본에 와서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동시대를 살았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시리즈물을 제대로 다 갖춰서 마무리지은 기분이랄까요.
동전의 양면처럼 완벽하게 서로 대치되는 두 여왕이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서로 견제하고 시기하는 이야기는 픽션 없이 현실 그 자체만으로 한 편의 소설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베스 쪽을 먼저 읽고 이 메리 스튜어트를 읽는 게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양쪽 작가 모두 자신이 그리는 여왕에 대해 굳이 미화하려고 하지도 않고 가능하면 객관적인 서술을 하려고 하는지라 두 책에서 그려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대개 일치합니다. 이 책에서는 엘리자베스가 더 멋지게 그려지고 저쪽에서는 메리가 더 가련하게 그려지거나 하는 일도 없이 말이지요.
다만 한 가지 차이라면 이전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전기에서는 그녀의 ‘여성으로서 문제가 있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관점을 부정했다면 이번 메리 스튜어트의 전기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는 역시 신체적으로 모종의 결함이 있지 않았나, 쪽으로 기울어 있더군요(뭐, 정확히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만).

이전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는 후반에 가면 한 편의 영국 왕실판 타로 이야기(…) 분위기(돈 이야기가 거의 중점적이니)였다면 이번 메리 스튜어트는 그야말로 통속극을 넘나드는 치정이 난무하는 조울증 여왕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서술하는 작가조차도 ‘그 시점에서 메리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며 어이없어 하지만 읽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도 어떤 성격이면 ‘저렇게 무모할 수 있을까’에 기함을 토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도 그런 만큼 이야기의 진행은 흥미진진해서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스타일이지요. -_-;(욕하면서도 보던 건 끝까지 봐야 한다..;)

여왕이라는 위치를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몰두했던 엘리자베스와는 정 반대로 메리 스튜어트는 완벽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를 자신이 신에게 받은 특혜라고 생각하며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작가는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을 밟고 있던 여왕과 사라져가는 중세의 끝자락을 잡고 살아간 여왕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왕위과 단두대가 한발짝 차이라는 것을 여왕에 오르는 순간까지 지긋지긋하게 경험한 엘리자베스와 태어난지 6일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 여섯살에 당시 유럽 최강이었던 프랑스의 왕태자비, 열 일곱살에 프랑스의 왕비 자리에 오르기까지 아무런 제재도 시련도 없었던 메리의 삶의 과정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요(이래서 사람은 자라온 환경이 중요한 것일지도…).
이전에 봤던 ‘제국의 태양 엘리자베스 1세’ 덕분에 이번 책은 두 여왕을 살아가는 방식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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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1. 리츠코

    미사>다른 건 모르겠고 접근하는 남자 인생 말아먹는 사신 급이라는 게 무서웠음. -_- 예전에 마리 앙투와네트도 그랬지만 츠바이크 글발은 과연 재미있어요. 메리 이야기를 엘리자베스 전기 쓴 사람이 쓴 걸로 봤으면 진짜 다 못 보고 던졌을 것 같음. -_-

  2. 미사

    메리야말로 정말 불행의 별을 이고 살면서도 자각 못하고(뭐 자각한 이들을 봐도 별다른 점은 없더만;;) 끊임없이 미친짓 -_- 을 일삼는 캐릭터 아니겠수 -_-? 츠바이크의 글발 때문에 재미있게 봤지만 다른 작가가 썼다면 아마 읽다가 내동댕이쳤을지도…;;

  3. 리츠코

    장미의신부>왠지 만화나 소설에서 쓰기 좋을 설정이예요. 두 사람 다 남자들에 치이는 게 장난 아니긴 한데 그래도 엘리자베스는 여왕의 권력을 가지고 나름 남자들에게 ‘훗, 너희는 내 애완견이지’ 하는 스타일인데 메리 스튜어트 쪽은 정말 완전히 남자 때문에 인생 말리고 또 접근하는 남자들도 그 여자 때문에 인생 종치는 경우더군요. -_-;

  4. 장미의신부

    메리 스튜어트가 주역으로 나오는 ‘바람의 왕궁’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그거랑 영화 엘리자베스를 각색한 만화 두가지를 같이 놓고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더군요. 두 만화 다 결국엔 이런저런 남자들에 치여사는 여인의 삶…이 주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