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작년에 읽은 중 가장 좋아했던 책의 화가 변월룡의 전시가 3년만에 다시 열리고 있다고 이 책을 읽은 다른 지인에게 소식을 들었는데, 장소가 멀어서 차일피일 하다가 그래도 이걸 놓치면 왠지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전시기간 거의 끝무렵에야 집을 나섰다.

실물로 보고 싶었던 건 ‘어머니’, 작가의 자화상, ‘최승희’ 초상화와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이었는데 전시회가 예상했던 이상으로 작품 수가 많아서 이 네 가지 모두 보고 그 밖에도 책에는 없었던 작가 후기 작품들까지 충분히 감상할 수 있어 예전에 읽은 책의 완벽한 마무리 같은 전시회였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화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른 시간대에 생각보다 관람객이 좀 있어서 놀랍기도 했고.

책을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실제로 봐도 이 사람의 그림은 풍경화보다 인물화가 메인.
초상화 한장 한장 보고 있으면 그리고 있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친밀감’을 가지고 그렸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보고 싶었던 건 바로 이 ‘어머니’. 1985.
작가의 어머니는 1945년에 돌아가셨고 이 작품은 작가의 말년인 1985년 작품이니 아마 본인이 기억하는 모습, 아니면 사진 같은 걸 참고했을텐데 그야말로 세계가 격동하던 시기를 살아가면서 정작 어머니와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이 그림은 노화가의 그리움 그 자체 아니었을까. 그림 앞에 서면 어머니의 표정과 마주잡은 손, 색감에서 찡한 울림이 있었다.
공들여 쓴 한글 제목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림 구석구석에 또박또박 쓰거나, 마치 그림의 일부인 양 흘려 적어둔 한글들을 읽다보면 ‘한글도 한자도 한국인임도 잊어버리지 않고 싶어하는’ 강한 고집마저 느껴진다.

1982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을 그리며 세상을 누볐지만 결국 본인이 가장 가고 싶은 곳에는 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건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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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아. 또 하는구나.

    1. Ritz

      이번주 일요일까지. 별다른 이슈가 없는 거 같은데 딱 한달 정도 열렸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