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린양은 지금 집앞 영어 도서관(영어 원서 읽으면서 쓰기, 말하기 등등 봐주는 곳)과 본인이 계속 하겠다길래 취미나 삼으라고 보내는 기타 수업, 이렇게 두 군데 학원을 다니고 있다. 나머지 과목 중에 본인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 내가 봐서 부족해 보이는 건 EBS 인강으로 해결 중이고.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은 뭔가 더 다녔거나 다니는 학원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다음주 확진자수를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내가 소심하니 도무지 대치동 쪽까지 애를 보낼 엄두가 안 나서 코로나 초기에 확진자가 확 늘었을 때는 다니던 학원도 다 거의 안(못?) 보냈었고 그나마 다시 정기적으로 가기 시작한지도 몇 달 안 됐다.(그리고 요즘도 다시 고민의 시기였는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낮에 학원에서 선생님 전원 백신 접종 완료했습니다 라고 알림 카톡까지 돌렸더란… 😑)

갈수록 절감하는 건, 인프라는 넘치는 곳이라 입맛대로 고를 수 있으니 차라리 학원을 돌리는 게 양육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적다.
주변에 뭔가 공부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은 ‘아유, 그냥 학원 보내’ 라는 대답(친절한 사람은 학원도 추천해준다)과 함께 그 뒤편으로 흐릿하게 ‘왜 그렇게 갑갑하게 굴어’라는 자막이 보여서 학원을 적게 보내는 노선을 유지하려면 결국에는 비슷한 성향의 엄마와 교류를 늘리거나(이 동네에도 없는 건 아니라) 엄마들과의 교류를 줄여서 삿된(…) 이야기를 덜 듣는 수밖에 없다.

왜 학원을 최소한으로 고려하는가 하면…
이 동네 학원들이 유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유능한 이유가 너무 분명해서? 과목마다 자기네 과목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잡아놔서 수업 시간도 한번에 3-4시간이 보통이고(시험 기간 들어가면 내신 준비 시킨다고 그냥 하염없이 붙잡아두는 곳들도 있는 모양) 숙제도 애가 집에 와서 그것만 해도 벅차는 양이라는데 아이의 시간을 수동적으로 그렇게까지 들여야하나, 망설여진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방학 특강 같은 건 한두 과목 골랐을 것 같으나 지금은 무리.

이 방향은 데이터를 모으려면 부모가 고민할 부분이 잡다하게 많다. 블로그 같은 데에 ‘자기주도형 학습으로 명문대를 보냈다!'(이런 글 보다보면 이게 자기주도인가 엄마주도인가 헷갈리는 경우도 가끔 있고…) 어쩌고 같은 글을 봐봤자 내 아이와 다른 상황과 성향의 이야기라 크게 도움이 안 돼서 가다가도 문득 이게 답이 아니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한번씩 올라온다.
린양은 학원을 보내면 꽤 성실하게 시간을 채우는 아이라 ‘그냥 학원 잘 돌리면 지금 좀 힘들고 나중에 결과는 좋을 수도 있는데 내가 괜히 허세 부리면서 앞길을 막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은 정기적으로 피어올라서 그럴 때마다 옆사람 붙잡고 징징거리는 중.
차라리 내 길이면 내가 저지르고 내가 감당할 텐데 내가 결정한 것들을 내 아이가 감당해야 하니 육아는 갈수록 너무 어렵다.

이번 성적표 보고 나는 린양이 기특했는데(전교를 씹어먹을 성적, 뭐 이런 게 아니라 알아서 혼자 꼬물꼬물 하더니 결과가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정도) 혹시 이게 내가 너무 정보가 없어서 나 혼자 좋아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혼자 하는 힘을 길러주겠다고 지켜 보고만 있는데 내가 방심하면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방임이 될 것 같고…

중산층 가정에도 꽤 있습니다. 부모님이 워낙 각박한 경쟁 속에 자랐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 넌덜머리가 난 나머지, 아이가 공부를 힘들어하고 포기하려 할 때 다른 방식을 찾거나 북돋아 주기보다는 그냥 두는 것입니다. 이 경우 아이는 분노보다 무기력과 연약함이 주로 문제입니다. 부모의 보호 안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만 가진 채 이상은 높고 현실은 보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뭐라도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격차를 직면하기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혹시 이런 게 아닐까 걱정하는 점을 어쩜 이렇게 딱 찍어서 풀어놨는지. 😑)

아이 혼자 하는 방향으로 집중하겠다고 결정한 후에 내가 제일 신경쓰는 점은 학원을 보내지 않는데 학원을 다니는 만큼 성적이 나오리라는 안이한 기대를 하지 말자,
그리고 결과를 숫자로 판단하기보다는 옆에서 볼 때 아이가 들인 노력에 비해 어느 정도 성과인지 가늠하고 그걸 기준으로 칭찬과 충고를 해주고 혹 아이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들인 노력의 방향이 틀린 건 아닌지 챙겨주자
이 두 가지인데 사실 이건 코로나 때문에 엄마들과 교류가 확 줄어들면서 “이번 시험 올백이 수두룩하대” 같은 말을 들을 일이 줄어들어 내가 다소 편해진 면도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서, 육아서 장르 책은 잘 안 사는 편인데 제목도 눈에 들어오고 저자도 린양이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읽고 좋았다고 해서 주문해봤다.

어른들은 거침없이 유흥업소를 누비는 동안 아이들은 매번 집에 갇혔고 근래의 2년이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흉터로 남을지 모르는데 사회는 놀라울 만큼 관심이 없으니 나라도 고민은 해봐야지 싶기도 했고.

예전에 우연히 작가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정보들을 모으고 글도 올리고 있어서 블로그는 지금도 구독 중.(지난번의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도 저기에서 추천 받은 책이었다) 청소년 상담을 많이 하는 분이라 그런가, 입시 관련 정보도 꽤 많이 올라온다..;;

앞으로는 100명의 아이가 100가지 다른 일을 하면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사회적 명망과 지위, 엄청난 수입을 얻을 수는 없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소소하지만 즐거운, 평범해 보이나 절대 시시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작가는 다분히 상업적으로 느껴질 만큼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나 원하는 토픽을 잘 뽑아낸다. 필력도 좋은 편이라 쉽게 읽히고.
이 책이 예언서나 정답지도 아니고, 육아서라는 장르가 어떻게 보면 점집과 약간 비슷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책을 골라서 내가 원하는 말을 듣고 싶은 면이 있다. 그런 만큼 육아관이 안 맞으면 공감하기 힘들거나 읽는 내내 지적해주고 싶은 부분이 백군데쯤 있는 경우도 많아서 선뜻 이 책 추천! 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그럼에도 오늘 카톡으로 네 명쯤 영업한 거 같다) 일단 나는 저 위의 문단이 내가 원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전반적으로 내 성향에 잘 맞는 책이었다.

시절은 갑갑하고 하루하루 앞으로 가고 있으나 이게 어떻게 풀려나갈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좀더 전문적인 시각으로 정리해줘서 복잡하던 머릿속 실타래들이 조금은 느슨해진 기분. 다 읽고 나니 저자의 말처럼 앞으로의 세상을 예측해보려고 애쓰기보다는 일단 지금의 하루하루에 충실한 게 우선 아닐까 싶어서, 당장은 이번 방학을 린양과 어떻게 잘 보내볼 지부터 고민해봐야겠다.

요즘의 내 고민과 우연히 잘 맞아서 공부 이야기만 우르르 했지만 일단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하는 코로나 이후 아이들에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걱정, 집에서 부모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챕터만으로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저자가 만나는 다양한 유형의 부모 이야기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고 놓치고 있던 내 문제점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또다시 방학이 시작되었고 그야말로 역병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 아이와 어떻게 살아나갈까,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 책 볼륨도 그렇게 두껍지 않아서 부담없이 보기에도 좋다.

by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