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헛소리 말고 지시에 따라라! 멀리 있는 상사와 여기 있는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잘 생각해봐라.”
“아, 그야 당연히 상사죠.”
대답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되돌아왔다.
“그 사람을 화나게 했다가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거든요. 언젠가 예산을 초과한 적이 있는데 경비를 정산할 때 그녀가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그러고보니 신장은 보통 얼마 정도에 팔리나요?’라며 생긋 웃는 거예요. 전 아직도 가끔씩 자다가 가위에 눌리곤 한답니다….”
신부는 뭔가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중얼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표지발, 그림발로 대형 서점에서 선전하고 있는(?) 트리니티 블러드.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대박은 아니지만 그래도 판매 상황은 흡족한 편이다.
이번 3권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정말이지 두번다시 겪고 싶지 않은 NT Novel 사상 초유의 피 말리는 마감이었다. -_-;;;(그렇게 마감하고도 책은 나온다!)

상당히 통속적인 전개였던 본편 1권보다는 외전인 2권이 더 재미있었던지라 이번 본편 2권은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로 꽤 괜찮았다. 역시 현지에서 인기가 있을 때는 다 이유가 있긴 마련인 듯하다.
서술부분이 상당히 우아하다 해야 할지 섬세(?)한 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읽으면서 머리속으로 장면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작가 특유의 개성도 또렷해졌고 카테리나와 프란체스코 진영의 대립도 훨씬 흥미진진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음미하는 데 있어서 가장 방해 요소는 역시 1권에도 나왔던 여주인공(이라고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에스델이 아닐까. 보는 내내 에스델의 삽질과 땅바닥 파기에 괴로워 구를 수밖에 없었다. -_-;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간혹가다 아벨이 묘사하는 상사로서의 카테리나. 손톱을 다듬으며 ‘요즘, 일이 많은가봐요?‘ 라든지 ‘신장이 얼마 정도에 팔리죠‘ 라고 말하는 모습이 묘하게 상상이 잘 간다. 우아하고 얼음같은 여성이지만 왠지 그 이면에 누나같은 면이 숨어 있는 게 잘 보인다고나 할까(나는 이런 캐릭터가 취향임).

3권을 읽고 나니 이후 전개가 상당히 궁금해진다.

신부는 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음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오, 주여.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상사에게 혹사당하고 돈은 없고 동료에게 괴롭힘 당하고….”

그야말로 아벨 나이트로드의 인생을 단숨에 축약한 대사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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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1. 룬그리져

    >>앞머리가 일자인 단발머리 총각이었음..;
    호섭이!(…..라고 이미지가 파악~)

  2. 리츠코

    그런데 브라더 베드로를 삽화로 보니 생각하던 이미지랑 달라서 뜨악이었어요. ^^;;;(앞머리가 일자인 단발머리 총각이었음..;)

  3. 미사

    3권은 카테리나와 브라더 베드로 -_- 가 매력적인 책이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