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우리가 내고 있는 라이트 노벨과는 좀 다르지만 꾸준히 일본 서적을 내고 있는 손안의 책에서 쿄고쿠 나츠히코의 책 시리즈를 내기 시작했더군요. 처음에는 뭘까 했는데 알고보니 예전에 잠시 검토했다가 책 두께나 작품 방향이 우리가 내는 것들과는 좀 거리가 있어서 관뒀던 작품이었습니다.

뉴타입 팀 쪽으로 보도자료와 함께 이 우부메의 여름이 왔더군요. 팀장님이 다 읽어보시더니 꽤 괜찮다며 추천하시길래 읽어보았습니다.

내용은…
배경은 1950년 도쿄, 유서깊은 산부인과 가문의 한 남자가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후로 임신 중이던 그의 부인이 20개월 째 출산을 하지 못하는 기이한 상태가 이어지고, 우연히 이 일에 말려든 3류 소설가와 고서점 주인의 손에 의해 사건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말을 가져오는데…

작품은 분명 독특합니다. 미스테리물인가 하면 약간 괴담같은 분위기도 감돌고, 정말로 일본이기에 나올 수 있는 작품이더군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에 일단 기가 질리는 면이 좀 있습니다. 그냥 킬링 타임용으로 슬렁슬렁 읽기에는 좀 부담스럽겠더군요.
제목의 우부메는 일본의 요괴로,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자의 원념이라는데 이 이야기는 결국 우부메에 대한 슬픈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은 평을 이야기하자면, 600페이지를 할애해서 장황하기보다는 좀 더 잔가지를 쳤더라면 어땠을까 싶더군요. 이 600페이지의 주범은 다름 아닌 이 주인공의 친구인 고서점 주인 고쿄쿠인데, 이 캐릭터는 오만가지 철학서를 머리에 뒤집어쓴 것 같은 인물로 끊임없이 주인공에게 철학적인 논리로 앞길을 제시합니다.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글쎄요… 제가 제 전공을 배울 때 너무 끔찍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좀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누구누구의 철학책을 펴놓고 어느 한 부분을 고스란히 대사로 처리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예전 학창시절에 레포트를 쓰기 위해 앉아서 칸트의 책 한 부분을 죽어라 타이핑하던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좀 그렇더군요.
저로서는 차라리 천국에 눈물은 필요 없어의 아브델이 가끔 던지는 그 개뼉다귀같은 논리에 더 호감이 갔습니다.

교쿄쿠의 이야기를 적당히 참고 넘어갈 수 있다면 전체 줄거리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후반부의 반전도 꽤 괜찮았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사건 설명도 나름대로 명쾌하더군요.
번역도 예전의 키리하라가의 사람들 때처럼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결정적으로 한 가지가 좀 아쉽더군요.
바로 후반부에 나오는 무뇌증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작품에 있어서 꽤 중요한 소재(그렇다고 내용누설거리는 아님)인데도 번역자가 무뇌아를 무두아(無頭兒)라고 번역했더군요. 일본에서는 무두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대뇌반구가 아예 없거나 흔적으로 남아 있고, 그 위를 덮고 있는 두개골이 없는 것이 특징인 선천성 기형’을 무뇌증이라고 하고 그런 병을 가진 아이를 무뇌아라고 합니다만, 내내 무두아, 무두아 하니 목 위가 없는 사람이 생각나서 읽는 데 좀 방해가 되더군요. -_-;;

또, 국내 출판 현실상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이 책이 하드 커버의 양장본으로 나왔다는 것도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종이도 엄청 가벼운 걸 쓴 문고판인데, 이런 소설책을 좋은 종이질의 하드커버로 만들면 대체 이걸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지 좀 난감하더군요. 결국 집에서 휴일에 날 잡아서 모두 읽었습니다만 이런 건 지하철 같은 걸 타고 다니면서 읽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2 responses

  1. 리츠코

    김형진//다음 작품은 더 두껍더군요. -_-;; 두꺼운 건 별로 상관 없는데 괜히 쓸데없는 게 들어가 있으면 그건 확실히 짜증인지라. 저는 쿄코쿠 빼고는 우부메의 여름도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쿄코쿠는 정말이지 카도노 코우헤이만큼(?) 장광설이 심하더군요. 중간중간 정말 멀미가 날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_-;
    망령의 상자가 나온다면 그것까지는 읽지 않을까 싶은데 과연 이 우부메의 여름이 어느 정도 팔렸을지가 미지수네요. 웹을 다니다보니 이게 어느 정도 팔려야 후속작도 계획이 있는 것 같던데 말이지요.

  2. 김형진

    제가 여기 저기 “우부메의 여름”을 권한 이유는 이 시리즈 2탄인 “망령의 상자”를 제가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입니다(우부메의 여름은 솔직히 그저 그랬습니다 ^^;)
    사실 스토리가 그리 많이 이어지지는 않아서 처음 두세권 정도는 뭘 먼저 읽어도 상관이 없습니다만, “우부메의 여름”이 이 시리즈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얇기 때문에…(웃음) 처음에 감히 ‘망령의 상자’를 먼저 추천 못한 것이지요.

    뭐랄까, 쿄코쿠의 독백이 언제나 너무 긴 것이 이 소설 시리즈의 특징인데…이 장광설이 실제 사건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시리즈마다 호오가 많이 갈렸습니다. ‘망령의 상자’나 ‘무당거미의 섭리’ 같은 시리즈는 이게 아주 잘 맞아서 재미있었고, ‘우부메의 여름’이나 ‘백골의 꿈’ 같은건 이게 잘 안맞아서 재미가 없었죠.
    혹시 ‘망령의 상자’까지 번역이 나오거든 속는 샘 치고 거기까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