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미야자키의 애니에서 가장 강한 것은
역시 그녀들…

2004년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영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입니다.

올 연말연시에는 유난히 볼만한 애니메이션들이 줄줄이 개봉을 해서 다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만 일단은 인크레더블에 이어 하울까지 클리어, 다음은 샤크만이 남았습니다.

하울은 본 사람들의 평가가 찬반으로 심하게 갈려서 역시 직접 보는 게 상책이겠다 싶더군요.
일단 보고 난 감상을 간략히 말하자면, 이전의 센과 치히로보다는 약간 약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브리와 미야자키 감독의 힘은 건재했고, 기대치가 높았던 사람에게는 실망이 컸겠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감독의 평작 이상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줄거리는…

무대는 19세기 말, 유럽의 근미래화가들이 상상으로 그려냈던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 ‘앵거리’. 소피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자상점에서 쉴틈없이 일하는 18살 소녀입니다. 어느 날 오랫만에 마을로 나간 소피는 우연히 하울을 만나게 되는데…
하울은 왕실 마법사로서 핸섬하지만 조금 겁이 많은 왕자병 중증의 청년이지요(서슴없이 ‘아름답지 않으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것도 기무타쿠의 목소리로 들으니 나름 설득력을 가지더군요..;).
그런데 하울을 짝사랑하는 황야의 마녀는 두 사람의 사이를 오해, 주문을 걸어 소피를 90살의 늙은 할머니로 만들어 버리고, 그 후 가족을 걱정한 소피는 집을 나와 황야를 헤매다가 하울이 사는 성에서 가정부로 낯선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성은 사람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움직이는 성’이었는데…

성의 움직임만큼은 정말로 볼만했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던 대로 일단 원작을 보지 않으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묻지 마’로 진행되는 설정이라든지, 하울과 소피의 러브 테마가 충분히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해서 소피가 하울에게 ‘사랑해’라고 말해도 관객은 ‘헉? 언제부터?’라고 되물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역시 이전의 센과 치히로보다 내용면에서 좀 퇴보한 감이 있지만(원작이 있는 작품을 애니화하는 경우에는 역시 제아무리 지브리라 해도 스토리의 비약은 피할 수 없나 봅니다) 그 대신 다시 고전적인 맛으로 돌아와 붉은 돼지라든지 빨간 머리 앤을 생각나게 하는(?) 아기자기하면서도 필요한 시점에서 적절히 시원시원한 화면의 색채라든지 할머니가 되고 나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꽤 귀여운 성격의 여주인공 소피, 하쿠에서 업그레이드된 미형 남자 주인공 하울이라든지 하울이라든지 하울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이 경우 때문에 아마도 여성 관객의 점수가 더 높지 않은가 함).
물론 그 외에도 장점은 충분해서, 되는대로 마구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규칙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성의 움직임이라든지, 여전히 건재한 미야자키 감독 전매 특허 비행 장면들만으로도 영화관에서 보기에 아깝지 않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나니 소피에 대한 기시감은 더욱 확실해졌음..;
오른쪽의 소피는 영락없이 머리를 하나로 묶은 빨간머리 앤…-_-;

다만 작품 속에서 종종 예전 작품들에서 봤던 것과 반복된 느낌을 받았다는 점에서 슬슬 좀더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여주인공 소피는 아무리 봐도 초반에는 빨간머리 앤, 후반에는 나우시카..;)

국내에서 유명 배우가 성우를 맡게 되면 이번에는 또 얼마나 작품을 말아먹으려나 걱정이 앞서기 마련인데 외국은 역시 그런 면에서는 좀더 신중하게 연기자를 고르는 것 같습니다. 인크레더블이나 샤크 같은 미국 애니에서도 배우들의 연기가 전혀 문제가 없었듯이 이번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을 연기한 기무라 타쿠야 역시 딱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더군요(오히려 소피의 성우 쪽이 지나치게 코막힌(?) 발성이라 약간 거슬렸습니다).

하울의, 하울에 의한, 하울을 위한 애니라고나 할까…;
(미야자키 감독이 단발의 미형 남자 주인공에 맛들인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랭크를 매기자면 센과 치히로나 천공의 성 라퓨타보다는 아래이지만 그래도 그 밖의 작품들보다는 높게 쳐줄 것 같네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보고 나서 행복해질 수 있는 작품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인크레더블과 재미를 비교하는 것은 양식이 좋냐 일식이 좋냐를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을 것 같고(하울도 디지틀 상영을 해주면 좋겠음..;), 가능하면 둘 다 극장에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2 responses

  1. 리츠코

    키딕키딕>마지막에 등장한 왕자… 매우 쌩뚱맞았지..; 게다가 사라지는 뒷모습조차 매우 쌩뚱맞았음…; 그 왕자가 취향이라니 역시 당신도 참 만만치 않게 특이해. -_-;;;

  2. 키딕키딕

    마지막에 등장한 왕자가 역시…ㅠ.ㅜ 다들 쌩뚱맞다고 하지만 전 너무 멋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