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출판사의 홍보용 띠지에는 ‘기적과 감동을 추리한다’라고 되어있지만 이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기존 작품들을 고려한 문구일 뿐 실제로는 지난번 신참자를 읽을 때에 느꼈던 ‘이제 추리물이라는 장르에서 벗어나서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에 좀더 비중을 두고 싶어하는’ 작가의 변화가 완전하게 드러난 한 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는 가게라는, 마치 옛날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에나 나올 법한 설정을 기반으로 등장인물들의 고민이 하나씩 모이고 그리고 그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풀려가는 과정은 마치 아주 복잡한 문제지만 차근차근 잘 정리된 하나의 수학 공식 같았어요.

본문 중에서 읽으며 너무 공감이 가서 저도 모르게 혼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르겠다니…”
“내가 몇 년째 상담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우리는 이걸 요즘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고 하지요. -_-;

이 책에서 내내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주는 건, 상담을 해주는 입장에서는 참 어렵고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에요.(물론 대충 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 사실 물어봐놓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제일 불편해요.(답이 정해져있으면서 왜 자꾸 물어보니…) 물어봤다고 해서 꼭 내가 조언해준대로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봤을 때 정말 내 말을 듣고 고민를 하다가 원래 자신의 생각했던 길로 간 건지, 소위 ‘답은 정해져있었던’ 건지 어느 정도 보일 때가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최고는 아직도 ‘용의자 X의 헌신’이지만 그 다음으로 추리물이 아닌 중에 대표작을 고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을 꼽게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마지막에 짠 하고 감동과 교훈을 주며 마무리되는 엔딩은 뻔해서 약간 아쉽지만 그 과정을 읽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돼서 재주많은 이야기꾼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넋을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 ) 

소재면에서도 그렇고 엔딩도 그렇고 주변에 선물하기 좋은 책일 듯.  

XX시 외곽에 자리한 나미야 잡화점은 30여 년간 비어 있던 오래된 가게이다. 
어느 날 이곳에 삼인조 좀도둑들이 숨어드는데, 이들은 몇 시간 전 강도짓을 하고 경찰의 눈을 피해 달아나던 참이었던 것.

인적이 드문 외딴집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들앞으로 난데없이 나미야 잡화점 주인에게 보내는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고, 세 사람은 얼떨결에 편지를 열어 본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들을 노리고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윽고 편지 내용에 이끌려 답장을 해주기 시작한다. 
하나로 그칠 줄 알았던 편지가 계속해서 도착하고 어느새 세 사람은 고민을 적어 보낸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풀릴지 자신들의 일처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는데… 
각 편지에는 고민 상담을 보낸 이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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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1. joppark

    답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하는 유답교육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