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올해 설 영화는 세 식구 모여 앉아 승리호.

한국 SF 장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다보니 처음에 넷플릭스로 갔다고 했을 때는 ‘어차피 들인 돈에 비해 관객이 적게 들 텐데 명예로운 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난 감상은 ‘넷플릭스가 자기네 오리지널은 돈으로 발라도 하나 재미있는 걸 못 건지는데 말도 안 되게 적은 돈으로 멀쩡한 작품을 건졌구나’ 였다.

일단 화면 때문에라도 극장에서 보지 못한 건 아쉽고 사운드도 집에서 티비로 보기에 대사가 너무 안 들린다…;(결국 자막 켜놓고 봤음)

우리 식구가 보면서 이야기한 건 개그가 묘하게 영화 「극한직업」 리듬이었다는 점?(진선규 때문인가) 러닝타임이 짧지 않은데 꽤 아기자기해서 좀 늘어질 만하면 이야기의 완급이 오르내려 지루한 줄 모르고 봤다.
후기들 보다보니 ‘이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에 여지없이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다’는 평도 많았지만 뻔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는 것도 실력이고 신파라고 생각하는 요소도 요즘 같이 드라이한 이야기가 미덕인 세상에 ‘때론 이 정도 말랑한 감성이 뭐 그리 나쁠까’ 싶기도 하다.
더불어 나처럼 영화 보면서 미리 뒷내용 고민 안 하는 사람에게 후반부의 반전들은 충분히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SF 장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이것이 한국의 SF’라고 내세웠었는데 이 영화야말로 요소요소에서 좋은 의미로 ‘한국적’이어서 좋았다.(어디에서나 ‘녹취’는 기본, 마지막은 학원 이야기로 끝나는 이것이야말로 K-SF…)

네 명의 캐릭터가 각자 매력이 뚜렷하고 누구 하나 ‘과하게’ 연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영화가 좀더 보기 편하게 흘러가지 않았나 싶다. (우리 집 최고 인기는 역시 업동이)
언니 너무 멋져요…

예전에 스타트렉 앞 시리즈들을 보다가 이 드라마는 시대를 감안하면 이르게 사회적인 이슈들을 꽤 많이 다루었구나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의외로 SF가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설정의 제약없이 편하게 펼쳐내기 좋은 장르이고 이 영화 역시 요즘 시대의 젠더, 인종에 대한 이슈를 신경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그 점도 좋았다.

나는 송중기 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이나 여기에서 김태호나 확 다른 인물이라는 느낌이 안 듦. 😑) 내내 저 역할이 좀더 어울리는 배우가 있지 않을까, 아쉬웠는데 옆사람은 넷플릭스에는 오히려 그럭저럭 어울리는 캐스팅 같다고.

이 작품 자체도 좋았지만 나한테는 이후에 나올 국내 SF 장르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다.

6 responses

  1. 한국 SF 장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다보니 처음에 넷플릭스로 갔다고 했을 때는 ‘어차피 들인 돈에 비해 관객이 적게 들 텐데 명예로운 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난 감상은 ‘넷플릭스가 자기네 오리지널은 돈으로 발라도 하나 재미있는 걸 못 건지는데 말도 안 되게 적은 돈으로 멀쩡한 작품을 건졌구나’ 였다.

    이거..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1. Ritz

      비슷한 장르에서 찾아보니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미드나이트 스카이’ 제작비가 1천억이었다는데 거기에 1/3 가격도 안되는 승리호가 훨씬 재미있었어요. -_-; 넷플릭스는 거저 주운 거나 마찬가지… 돈 더 받고 팔아도 됐을 것 같아서 아깝더라고요.

  2. misha

    안 그래도 요즘 애들 학원 문제로 혼자 속앓이하고 있는 중인데(한 명은 죽어도 안 간다, 한 명은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_-) 마지막에 학원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거 보며 크 역시 애들 교육은 몇 겁의 시간이 흘러도 타협 불가능한 난제로구나 하며 적잖이 위안을 받았습니다… 저는 다들 통역기를 끼고 각자 모국어로 얘기하며 소통하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야말로 유니버스!!!

    1. Ritz

      학교 외에 또래 친구 만날 곳이 학원 밖에 없어서 딸내미 말로는 학원 많이 다니는 애가 아는 친구도 많아서 인싸라더라고요. -_-;; 두 따님이 성향이 정말 극과 극인가봐요.. ^^;;

      2090년이 아니라 2900년에도 (한국이 남아있다면) 한국은 교육 문제가 가장 치열하지 않을까요. 다른나라 역사를 훑어봐도 우리나라만큼 먹고 살기 힘들어도 기쓰고 애들 교육에 올인하는 민족이 잘 없더라고요. -_-;;
      저는 마지막에 학원 이야기 보면서 통역기 때문에 영어 학원도 없겠구만 기본 5개는 뭘 배우는 걸까 궁금했네요…( ”)

  3.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평이 좀 갈리던데 전 좋은 평을 줄 수 있을거 같더군요. 순정남 피에르씨도 그랬지만 역시 업동이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긴 합니다.

    1. Ritz

      어차피 즐겁자고 보는 블록버스터인데 굳이 깐깐하게 평할 필요 있나 싶어요. 극장에서 돈 내고 봤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영화인데 오히려 넷플릭스에 갇힌 것 같아 아깝더라고요.

      유해진 배우는 나중에 완성된 영화 보면서 신기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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