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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소문내라 했으니…

새벽 5시쯤 무언가에 마구 쫓기는 꿈을 꾸다가 일어났는데 식은땀이 잔뜩 난 데다가 순간적으로 숨이 제대로 안 쉬어졌다. 이러다 말겠지 하고 좀 기다려보는데 도리어 온몸이 싸늘하게 피가 안 도는 느낌이 들면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이러다 사람이 숨을 못 쉬어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 결국 옆사람을 깨워서 응급실로.

시절이 이렇다보니 확실히 지금까지 간 중에 제일 덜 붐벼서 보통 응급실 가면 4~5시간은 쉽게 잡아먹는데 이번에는 증상 설명하고 피뽑고 엑스레이 찍고 심전도 검사까지 다 하고 결과 나오는 데까지 두어시간 밖에 안 걸렸다.
요근래 주변에 협심증으로 스텐트 시술한 사람이 우연히 둘이나 있어서 나도 뭔가 그쪽으로 문제가 생겼나 걱정하며 간 거였는데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

심전도, 산소포화도, 염증 수치 등등 검사한 것들 모두 정상, 엑스레이 결과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담당 의사가 공황이나 스트레스성 과호흡 같은 심리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당장 처방해줄 건 없고 2주쯤 뒤에 마저 확인할 수 있게 심장내과 외래만 잡아주고 끝났다.
그러면서 한 마지막 말이
“신촌 세브란스에서는 잘 없었는데 여기(강남 세브란스)는 유난히 이런 경우가 많더라고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무튼 나는 아직 숨이 갑갑한데 문제 없으니 집에 가도 됩니다, 라고 해서 일단 귀가는 했고, 시간이 좀 지나니 나아지는 것 같긴 하지만 오늘 밤에 혹시라도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쩌나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안 나아질 기분이라 옆사람이 부랴부랴 근처에 평이 괜찮아 보이는 신경정신과를 검색해서 당일 예약을 잡았다.

생각해보니 가끔씩 이렇게 호흡이 힘들어서 고생하는 건 거의 20년 가까이 됐는데 회사 다닐 때는 전철 타고 가다가 갑자기 힘들어서 잠시 내렸다가 다시 탄 적도 있고 옆사람과 한참 데이트할 때도 비슷한 일이 두어번, 그 뒤로도 1년에 두어 번은 차 타고 가다가 심하게 힘들 때가 있었는데(그래서 차로 장거리 이동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함)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보니 언제 한번 제대로 체크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차일피일하다가 결국 병을 키웠나 싶기도 하다. 오늘 정도로 힘든 건 처음.

어쨌거나 인생 첫 신경정신과.
설명을 했더니 이것은 역시나 공황.
처음에는 장기간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길래 갑자기 바로 결정하기는 좀 망설여져서 ‘나는 이게 1년에 두어번 정도 있는 일이고 지금 걱정하는 건 오늘 밤에 혹시라도 또 같은 일이 있을까, 인데 일단 그것만 넘겨본 다음 추후 비슷한 일이 좀더 자주 발생하면 그때 생각해보면 안될까요’라고 물었더니 그 정도 빈도수라면… 이라며 일단 당장 공황이 또 왔을 때 먹을 약만 처방해주겠다길래 받아왔다.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처방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많이 수용해주는 점이 좋았고 말하다보니 아, 내가 이래서 그랬나보다 하고 정리가 되는 기분도 들어서 별것 아닌 걸 괜히 미루고 있었구나 싶었다.

공황장애란 뭔가 찾아보니 특별한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신체의 경보 체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며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와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증상.
이게 원인과 결과가 딱 맞아떨어지기보다는 일종의 알람 센서가 고장난 거라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 고민해봤자 더 해로울 것 같고 가능하면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나름 노력했어도 원래 예민한 성격이라 알게 모르게 켜켜이 쌓였던 것들이 갑자기 훅 터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내가 내 몸에서 조금이라도 이상 사인이 올 때마다 과하게 겁을 먹는 것 같아서 평소같으면 진작 내과 다녀왔을 소화 상태인데 미루던 걸 내일 마저 다녀올 예정.

당분간은 병원에서 권한대로 커피 류를 줄이고 시기가 시기다보니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날 수밖에 없는 트위터도 잠시 멀리하려고 메인 페이지에서 앱을 치웠다. 트위터 10년 넘게 쓰면서 앱까지 지운 건 처음. 엄청 심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 안 열어보니 의외로 평온하고 그럭저럭 지낼 만 하다. 일단 목표는 일주일.

어딘가 안 좋다고 생각하면 귀찮아도 역시 제때제때 해결해야 가래로 막을 걸 호미로만 막고 끝낼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트위터 보는 시간이 줄어든 대신(그 시간만큼 인스타랑 페북을 보려나?;;) 블로그에는 뭐라도 계속 끄적거릴 것 같고 블로그 글은 계속 트위터에 연동은 해둘텐데 멘션은 아마 확인을 못 할 듯하고 이곳에 남겨주시는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모두모두 건강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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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s

  1. 후우

    새벽에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서 정말 놀라셨겠어요. ㅠㅠ
    SNS는 근황을 주고 받기 편하고 재미있긴 한데, 그만큼 스트레스에 노출되기도 쉬운 것 같네요…
    모쪼록 마음 편히 가지시고 앞으로 별 탈 없으시길 기원합니다.

    1. 새벽에 증상이 나타나면 방법이 없어서 ‘어, 어쩌지’ 하고 당황하게 되는데 그게 다시 증상을 악화시키고 무한루프를 돌더라고요. 진짜 깜짝 놀랐숴요;;
      랜선으로만 길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SNS 아니면 근황을 알 방법이 없고 서로 이야기 나눌 통로도 없어서 트위터를 잘 쓰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근래 이래저래 너무 많이 본게 저한테는 별로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명상 앱 같은 거라도 받아봐야할까봐요. ㅋㅋ

  2. 아고.. 눈팅만 하다가 댓글은 거의 첨인가 싶은데.. 놀랐겠다.. 울 남편도 같은 증상은 아니지만 꾸준히 상담받고 약 먹고 있는 상황이라.. 너무 걱정말고 맘 편히 가지길~~ 코로나 상황이 좀 괜찮아지면 만나서 수다떨자~!

    1. 안그래도 어제 그 병원도 가서 잠깐 앉아있으니 사람이 정말 꾸준히 들어와서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싶더라고. 혹시 어제 밤에 또 그러면 어쩌나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별일없이 지나갔고 여차하면 이제는 약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있음~ 대체 언제쯤에나 얼굴을 볼 수 있는 건가 싶네. ㅋㅋ
      남편분도 치료 잘 받으시고 쾌차하시길!

  3. 그래도 병원에서 진단 받고 대처를 하시니 50%는 나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지고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느끼시기를…

    1. 차라리 병원에서 확실하게 공황장애입니다, 라고 듣고나니 후련하더라고요. 받아온 약도 방패 마냥 위안(?)이 되고. 오전에 다녀온 내과에서도 신경성 소화불량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당분간은 정말 유튜브로 명상 영상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싶어요..( ”)

  4. 애고 이런… ㅠㅠ 지금은 좀 편해지셨나 모르겠네요. 쾌차하시길 기도합니다…

  5. 빨리 좋아지시길(…)

  6. 윤미

    무섭고 힘들었겠다 ㅠㅠ 의사 잘 만나는 것도 정말 중요한 듯! 예쁜 꽃 보면서 좋은 봄 보내~^^

    1. 생전 처음으로 구급차를 불러야하나 고민했네;;
      정말 의사 잘 만나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 오늘 간 신경정신과 병원도 괜찮았는데 자주 왔다갔다 하기에는 집에서 거리가 약간 애매해서 본격적으로 치료할 마음이 생기면 좀더 가까운 데에 찾아볼까 싶고 그러네.

  7. H. Son

    심리적인 병은 참 어려운듯하다.
    잘 추스르길 바래.

    1. 그러게. 막상 길게 약 먹고 치료하자고 하니 좀 심난해지더라고? 좀더 지내보고 결정하려고.

  8. March Hare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저도 트위터는 잘 안 들어오고 오늘 하루는 라쿠텐만 들락거렸어요. 파일롯 신상 볼펜이랑 홋카이도 과자랑 쿠마몬이랑 전에 올린 문조 인형을 샀습니다..
    기분 전환 기분 전환-

    1. 여지껏 한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컨디션 안 좋을 때에 한꺼번에 부정적인 글들을 우르르 읽고 나니 뭔가 독기를 쐰 기분이더라고요. 트위터는 지인들 안부가 궁금해서 쓰는 용도였는데 요즘 무료하다고 괜히 팔로우를 늘였나 싶기도 하고… 얼마전에 이 계정 쓴지 11년 됐다고 알람 뜨던데 이 김에 아예 새 계정을 파볼까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 괴나리봇짐 문조? 너무 귀여웠는데~ 받으시면 인스타에 꼭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