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몇년 전쯤인가 미디어에서 경성에 대해 모던걸, 모던보이들이 활보하던 ‘화양연화’ 였던 마냥 그리는 게 흥하던 시절이 잠시 있었는데, 얼마전에 읽은 어느 책에 적혀있던 말을 빌자면 해외의 문화가 유입되고 겉보기에 화려한 백화점과 다방과 카페가 길거리에 넘쳐났을지 몰라도 그걸 이 땅에서 누리는 건 대개의 일본인 아니면 그들의 조력자가 된 조선인 정도였고, 대부분의 우리는 그저 식민지의 국민으로 일자리를 찾는 것도 힘들고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암울한 때였단다.

이 작품은 그 어두운 시간에 대한 이야기.

1926년 일제 식민 지배 하의 조선. 17세 소녀 수아는 군산 일대 친일파 대지주의 집에서 몸종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수아는 부상을 입은 채 해변가에 쓰러져 있는 독립운동가 의현을 발견하고 그를 보호하게 되는데…

옆사람이 꽤 전부터 추천했는데 완결 안 된 작품에 손대면 기다리기가 목 타서 완결되면 몰아서 볼 생각에 미뤄뒀다가 마침 어제 수인씨가 완결됐다고 글을 올렸길래 드디어 때가 되었군, 하며 첫 회를 열었고…

새벽 4시까지 한큐에 훑었다.(이제 이렇게 날밤 새면 힘들어..=_=)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내가 이럴 수 있었을까’ 혹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이 시절을 살았을까’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하는 시간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달쯤 전에 옆사람이 올린 글에서 나는 아마 ‘직접 독립운동 하지 못하나 마음의 지지’와 ‘그럼에도 대세는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자포자기’ 반반이었을 듯. -_-;

옆사람은 해수에게 쎄게 치인 모양인데

나는 너무나 타이밍 좋게 이러고 놀렸다..( ”)

나는 굳이 고르자면 한연경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윤동주나 변월룡에 대한 책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저 시절 사람들의 받은 것 없는 조국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접할 때마다 그들이 자식도 가족도 과감하게 마음에서 지우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 근원이 궁금해진다.

왜 모두들 그냥 살아지지가 않는 건지,

그러고보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아마 ‘그냥 살아지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을지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몰입도를 높이는 건 탄탄한 그림체와 컬러.(이 두 가지가 너무 좋아서 책으로도 소장해야 할 것 같다) 이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주간 연재가 가능한가? 싶을 만큼 화면이 아름답고 작가가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미리 마지막화까지 머리에 넣고 그려나갔음이 분명한 주저없는 스토리라인에 훅 몰입했다.

드물게 지금부터 읽으면 완결까지 한번에 끝낼 수 있는 작품(마지막화는 오늘 기준으로 아직 무료로 안 풀리긴 했음)이기도 해서 추천. 이런 긴 호흡의 이야기를 기다림 없이 한번에 읽을 수 있었던 나는 승자. ✌

http://naver.me/FYJKJt9R

by

/

4 responses

  1. misha

    고래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연재중’ 작품은 잘 못보는 터라(게다가 가급적 단행본파;;;) 하염없이 기다렸는데…드디어!!! +_+ 주구장창 읽을 때가 되었군요!

    (로설이긴 한데 ‘경성탐정사무소’도 적극 추천하옵니다~)

    1. Ritz

      오, 저처럼 완결 대기타는 분이 또 계셨군요. *.* 저도 뒷이야기 기다리는 게 싫어서 차라리 한편으로 마무리되는 생활툰 같은 걸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웹툰은 스크롤 내리면서 보는 게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네요;; 나중에 단행본으로 보면 어찌나 편한지. =_=

      추천해주신 작품도 찾아보겠숴요!! 왠지 제목이 제 취향. *.*

  2. 저도 해수파였어서 ㅠㅠ 근데 여기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서 ㅠㅠ 이럴 것 같아서 결말 먼저 보고 역순으로 읽어서 충격을 줄였는데도 슬픔이 가시질 않아요 ㅠㅠ

    1. Ritz

      저도 일단 맨 마지막회 결제해서 보고 난 후 프롤로그부터 정주행…( ”)
      엔딩을 알고 본 건데도 한명한명이 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떠나서 다 읽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아릿하네요. 뭔가 읽고 이렇게 길게 여운이 남는 것도 오랜만이예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