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앞의 글을 찾고 보니 캐러비안의 해적 1편이 개봉한지 벌써 3년이나 흘렀었군요. 1편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 ‘오락 영화란 역시 머리에 남는 게 없는 건가벼’ 했는데 본 지 꽤 된 것도 이유였네요.

보다 리얼하게 지저분해진 분장으로 선장 잭 스패로우가 돌아왔습니다.
사실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은 엘리자베스나 올랜도 블룸의 윌 터너는 많고 많은 헐리우드 배우들 중에 대체할 사람이 없겠나 싶지만, 이 잭 스패로우 만큼은 조니 뎁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매력있었을까 싶네요.

영화 자체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1편보다 훨씬 빠르고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내내 구르고 싸우고 부수고 달려대지요.
그럼에도 티아 달마의 집으로 가는 길 같은 신비한 분위기라든지 부스트랩 빌과 윌의 부자간의 이야기 등이 추가되어 1편보다 한층 설정은 깊어진 느낌입니다. 윌과 엘리자베스의 캐릭터도 1편보다 좀더 성장해 있고요.

예전보다 입담들이 줄어든 건 좀 아쉬웠습니다.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던 물레방앗간신(…)

어둡고 음산하면서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분위기지요. 달마 역 배우도 멋지더군요.

다 보고 나니 기억에 남는 건 내내 3박자로 싸워대던 등장인물들이로군요. 원래 둘이 총을 겨눈 것보다 세 사람이 서로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게 더 멋진 법이긴 하죠.

당분간 문어 생각은 안 날만큼 리얼한 특수효과라든지 성룡의 무술영화 느낌의 딱딱 떨어지는 박자의 싸움들 등, 여름철 블록버스터로서 손색없이 즐거웠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읽던 에이브 중 한권처럼 잘 쓰여진 모험 소설 같은 작품이었네요.

영화 한편이 한국의 영화 2편 값이 넘네요.
이런저런 할인 데이가 많아서 잘 맞춰가면 좀더 싸게 볼 수 있는데
오늘은 그냥 무작정 나섰던 거라 미처 감안을 못했네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9월 2일 개봉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다 지나간 X-men 3편은 아직 개봉 전.

한국에 있을 때는 메가박스와 집이 가까운 편이다보니 왠만한 블록버스터들은 모두 극장에서 봤었는데 일본에 오고 나니 영화를 보러 갈 일이 확 줄어들었네요.
가장 큰 장벽은 자막(영어도 일어도 모두 제대로 될 리가 없다!)이고 두번째는 한국보다 비싼 영화비입니다.
일본에서 이전에 두번쯤(두번 모두 애니메이션, 그것도 이케부쿠로에서. -_-;) 영화를 본 적 있는데 그때 시설도 썩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별로 안 내키기도 했고 말이죠.

오늘 간 곳은 이전에 말한 미나미마치다에 있는 시네마 109였는데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시설은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영화를 봤던 곳은 1관이었는데 크기는 메가박스 6관쯤 되었던 것 같네요.
영화가 다 끝나고 스탭롤이 모두 오를 때까지 불을 안 켜는 건 한국과 다르더군요.
이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요즘은 다 끝나고 서비스 신이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한국에서는 그걸 보기 위해 영화 끝나자마자 불 다 켜지고 청소하시는 분들도 들어오시고 왠지 나가야 하는 뻘쭘함을 견디며 봤었는데 그에 비해 훨씬 편했습니다.

10 responses

  1. ‘개물놀이’가 생각나는 제목일세-O-

    1. 리츠코

      왠지 일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붙인 것 같은 표기법이예요. -_-;

  2. 크리스

    엑스맨3에도 서비스신있다고 해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끝까지 기다렸는데 스탭이름 다 올라가더니 뚝 끊기더군. 그래서 없는줄 알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있었더라고~ 나쁜 용산CGV~ -_-+

    1. 리츠코

      그래도 그런 걸 제대로 다 보여주는 건 역시 메가박스라고 하더군. 그러고보니 엑스맨도 보러 가야 할텐데…

  3. 민윤

    일본개봉시 제목이 한글발음 그대로 <괴물>로 간다는 건, 나름 이슈가 되었었지~ 수입사의 의지이자,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랄까~ 그런 측면에서 대찬성!! (필요한 설명은 부제로 달아놓았으니까.. ) 포스터는 좀 아쉽긴 한데, 국내에서 쓰인 스타들의 얼굴빵이 일본에선 통할리 없으니, 오히려 ‘괴물’을 쓴 거였겠지… (물론 송강호아저씨, 나름 일본에서 인지도가 있긴 하지만..) 저 컷보다는 딸내미가 괴물 꼬리에 매달려있는 컷이 더 좋은데… (송강호 얼굴빵대신 괴물 얼굴빵이라니..ㅋㅋ)

    1. 리츠코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송강호보다는 배두나의 인지도가 더 높을 것 같긴 하군. ^^ 게다가 여기서라면 확실히 괴물 얼굴빵이 더 홍보가 되지.

  4. gample

    윽. 괴물 광고포스터 좀 문제있어보이네요. 한국에선 괴물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편인데.. 광고에서도 잠깐 찰나로 지나가기 때문에 막연한 공포를 남기는 마케팅을 쓰고있는데 저렇게 터억 스틸컷이라니..

    1. 리츠코

      일본에서는 괴수물 팬들에게 ‘이것은 괴수물이다!’라고 어필하면서 홍보하고 싶은 것 아닐까요..( ”)

  5. 삭은이~

    구에물… 그냥 The Host(영어 제목)을 쓰던지 일본어로 괴물을 쓸줄 알았더니 발음대로 붙여버렸네요. 그래도 이 영화는 개봉하면 보기 좋겠네요. 환상적입니다~ 라고는 못하겠지만 개봉하면 꼭 보러 가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재미 면에선 모르겠지만 퀄리티 면에서 한국 영화도 꽤 올라온걸 느끼게 해주는 영화니까요.

    1. 리츠코

      사실 The Host보다야 괴물이라는 제목이 더 인상이 강하긴 한데 일본어가 아닌 한글 발음을 그대로 제목으로 쓸 줄은 몰랐군요.-_-; 뭐 한국에서도 외국 영화 제목을 일부러 그대로 한글 표기하는 일이 많으니 그거랑 일맥상통하는지도요.

      영화는 벌써 보셨나보네요. 평이 좋아서 저도 꼭 보러 갈 예정이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