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에바 극장판이 개봉했을 즈음에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보였는데 어딘가에 주소만 저장해놓고 잊고 있다가 왓챠 애니메이션 목록을 한참 내리다가 발견했다.

다큐멘터리는 시작부터 슬프다.
에바 극장판 마지막편이 제작된다고 해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는데 그게 ‘4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고…( ”)

이 감독에 대해서는 아내 안노 모요코의 ‘감독 부적격’만 봐도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 속 안노 히데아키는 그보다 상상 이상으로 기이한 사람이었다.

초반부의 극장판 작업 과정에서 내내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아닌 건 알겠어’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우워~ 저런 상사 세상에서 제일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무언가를 만든다는 걸 ‘목숨보다 위에’ 두고 사는 사람은 너무 위태롭다는 생각을 했다.(안노 감독은 결혼을 안 했으면 정말로 식생활 때문에 단명했거나 정신적으로 못 버텨서 오래 살지 못했을 것 같더라…)

안노는 피를 흘리며 영화를 만든다.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 후반부에 오니 진짜로 ‘저러다 사람이 죽겠는데?’ 싶었는데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본인은 보지도 않는 걸 보며, 완성품을 보면 다시 고치고 싶은 곳이 보일까봐 무서운 게 아닐까 넘겨짚어봤다.

나도 처음의 에바(95년)부터 같이 세월을 보내온 사람이라 마지막편의 마지막을 볼 때는 좀 울컥하긴 했지만,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니 한 인간이 이렇게까지 모든 걸 다 쏟아 부은 결과물을 좀더 진지한 마음으로 봤어야 했나? 라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

2 responses

  1. valhashi

    통제가 안되는 (+역으로 다큐 카메라를 통제하려 드는) 피사체 때문에 산만해져 버린 구성의 다큐멘터리임에도, 완전 몰입해서 보면서 놀람, 반감, 분노, 경외의 다양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안노 감독의 컨텐츠 제작방식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보이는데, 그런 방식이기에 저렇게 비상식적으로 독특하고 색이 뚜렷한 작품이 나왔던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도 들고, 그러면서 주변동료와 자신을 극단적으로 소모시키는 모습을 보면 저정도면 범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예전에 무언가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 Ritz

      앗, 그죠! 처음에 보는데 카메라가 너무 흔들려서 놀랐어요;; 요즘 유튜버들 방송도 저렇지는 않은데. 중간에 다큐멘터리 스탭들 불러다가 자기 많이 찍지 말고 자기 말은 나레이션으로 넣으라는 지시까지 하는 거 보면서 다큐멘터리 찍는 사람들 4년동안 몸에 사리가 쌓였을 것 같더라고요.( ”)

      저는 앵글에 대한 집착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까지 나온 적 없는 앵글’을 그렇게 집요하게 찾으니 매번 작품이 뭔가 다르게 보였던 거구나 했는데, 거꾸로 지금까지 나온 무수하게 많은 미디어들에서 아직 쓰지 않은 앵글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본인도 그만큼 괴로워하니까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거지 저 정도면 시쳇말로 직원들에게도 가스라이팅이 아닌가 싶었어요. -_-;(이건 아닌데 ‘왜 아닌지는 모르겠고 일단 아니다’ 에서 제 머릿속에서도 버튼이 눌리더라고요-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보는 내내 안노에게 반감이 들었다가 동정심이 들었다가 어이가 없었다가 참으로 다양한 감정의 파도를 타게 만드는 다큐였어요. 본인 말로는 요즘은 신비주의가 안 먹히는 세상이라 장사 잘 되라고 찍었다고 했지만 보고 나니 더 신비한 사람이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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