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요즘 뭐든 ‘틀어놓고 bgm처럼 소비하는’ 편인데 이 플루토는 첫 화를 보고나니 내용이 무거워 기분이 너무 가라앉아서 그렇게 한번에 몰아서 볼 자신이 없어 하루에 한 편씩 차근차근 봐 나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끝.

원작 만화도 분명히 보다 말았는데 어디까지 봤더라, 해서 찾아보니 놀랍게도 3권까지나 봤었더란. 벌써 17년 전이니 당연히 그쪽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채로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으로 <철완 아톰>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지상 최강의 로봇 편을 토대로 그렸다. 처음에 원작을 읽을 때 내가 어릴 때 보던 애니메이션 아톰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는데 한참 뒤에야 그 중 에피소드 하나만 가지고 만든 이야기라는 걸 알았더랬다.

각 에피소드의 러닝 타임이 한 시간 정도. 완성도도 높아서 옛날 OVA 시절 작품들 생각도 났다.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간결한 그림체를 애니로 밋밋하지 않게 재현해낸 점도 인상적.

랩탑에서 지루한 장면은 빨리 돌리며 보는 게 습관이 됐는데 이 플루토는 처음부터 끝까지 티비로, 단 한 순간도 스킵하지 않고 감상했다.

노스 2호의 이야기도, 헬레나와 텐마 박사의 조우 장면도 한참 먹먹하게 마음에 남아서 그 자리에서 다음 화로 넘기며 그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아껴서 볼 만했던 작품.

로봇은 인간을 죽일 수 없게 프로그래밍된 질서정연한 세상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유로폴 소속의 로봇 형사 게지히트가 이 사건의 수사를 맡아 범행 현장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선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사건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진다.
진실을 찾아 추적을 이어가던 게지히트.
그는 곧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사악한 증오의 기운을 마주한다. 그 존재는 세상을 파멸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데.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인간은 왜 굳이 인간과 비슷한 로봇을 만드는 데에 저렇게 열심인 것일까.
인간과 가깝다고 해서 그들을 인간과 똑같이 대우해주지도 않으면서,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자랑할만한 일일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타인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게 로봇과 구분되는 인간이라면, 인간은 참으로 무용한 존재다.

고도로 인간과 가까운 로봇이 있다면 그 로봇은 인간일까, 로봇일까.
사고로 인체의 ‘대부분’이 기계화된 인간과 로봇은 대체 무슨 차이일까.
그걸 구분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처음에 요한인 줄 알았돠. -_-;

마지막에 아톰은, 피노키오는 인간이 된 걸까.

근데 아톰이 저때 입고 있는 옷, 몇 도까지 견디는 재질인 건지….? 😶

4 responses

  1. Anonymous

    추천 덕에 결국 8화까지 다 봤습니다. 놀랐던 것은 당연히 영화를 보면서 바로 떠올릴 수 밖에 없는 로봇과 인간 이야기말고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과 ‘미국’의 이야기를 ‘미래 일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참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리츠코님 이야기대로 ‘인간이 필요한가’란 생각은 계속 들었습니다. 생각할 거리,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였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나저나 테디베어 로봇과 부서진 로봇 2가지는 여전히 어떻게 만들어져서 그 지경이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 휴머노이드 로봇의 나라가 만들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똑같은 전범국 일본과 독일의 로봇이 주인공인 것도 신기합니다. / 아 인사가 늦었네요. 남들 하는 트리달기 유행같은거 별로 제가 잘 못해서 ㅎㅎ 여기에 인사드려요.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 Z

    1. Ritsko

      최근에 본 작품 중에 밀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거 보고 <음양사> 보니 음양사는 화면이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그쪽도 역시나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기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왜 하필 독일인 게지히트였을까요. 일본 작품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할 때 은근 독일을 잘 끌고 들어가는 듯도 싶고 말이죠.

      뉴스란에 신물이 날 때 이런 작품을 보면 하염없이 인간에 대해 회의가 들죠.( ”) 인간이란 뭘까, 뭐하러 존재하는 걸까 뭐 그런.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보내셨나요.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

  2. 까치

    제 다른 친구가 이거 보면서 너무 마음이 힘들고 많이 울었다고 해서 보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릿츠님 포스팅 보니까 왠지 한 화 정도는 봐볼까 싶어요…! (그나저나 꾸준히 포스팅을 하셨군요 요새는 블로그 포스팅 꾸준히 하시는 분들이 왤케 존경스러운지 몰겠어요^^;

    1. Ritsko

      마음이 힘들긴 한데 뒤로 갈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서 결국 다 봤네요.
      잘 만들었어요. 저처럼 하루에 한 편만 보시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

      블로그에 글 쓰는 건 그냥 너무 오래 돼서 습관이기도 하고 제가 말이 많아서 그렇죠,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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