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린양 기말고사가 어제 끝나면서 ‘결과가 석차로 나올 예정인 시험’이라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또 하나의 처음이 지나갔다.(그리고 이제 ‘등수가 찍힌 성적표’라는 처음이 기다리고 있다. 😱)

07년생인 린양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면,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는 걸 본 적이 없다. 교육부에서는 교육열이 과열되는 걸 막겠다며 선심쓰듯 초등학생 시험을 모두 없애 버렸는데─과목별 쪽지시험? 느낌의 성적을 산출하는 단원평가를 보는 과목이 가끔 있긴 했으나 이것도 선생님 재량인 듯─내가 보기에 이건 오히려 자기 아이의 성적을 학교에서 검증해주지 않으니 불안한 엄마들을 모두 학원으로 내몰았고 ‘학교 시험에서 *개 틀린’ 아이가 없는 대신 유명 ** 학원의 **레벨로라도 자기 아이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엄마들 덕에 학원만 흥하는 부작용을 낳지 않았나 싶다.

중1 올라오니 난데없이 앞으로의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주겠다는 이유로 시험이 없었다.(도대체 중1 때 마음먹은 장래희망대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린양 학년은 그 타이밍이 코로나와 겹치면서 깔끔하게 한 해를 날렸다.

이렇게 아이들이 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연습은 해보지도 못한 채로 중2가 되면 갑자기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생기는데 다시 놀랐던 건 중간고사 때는 과목 수가 학교마다 다르다. 보통 3~5 과목 사이인 모양인데(린양 학교는 세 과목이었다) 시험을 치는 과목도 학교마다 천차만별.
기말은 여섯 과목이었는데 중간고사와 겹치지 않는 과목의 시험 범위는 당연히 한 학기 분량. 여기에 없는 과목들은 수행평가 본 걸로 점수를 낸다.

이 표를 보니 중간기말 성적으로는 전체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도 없겠네…

예전에 우리는 대부분의 과목이 필기였고 실기시험을 보는 건 예체능 정도였지만 지금 아이들은 대부분의 과목을 학기 내내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실기시험을 치면서 지필고사도 준비하는 셈이니 아무리 봐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보다 (학습량이 아닌) 할 일이 두 배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2~3주에 한번씩 등교를 하니 등교하는 일주일 안에 일정을 다 끝내느라 하루에 많으면 3-4과목씩 수행평가를 봐서, 애들이 등교=수행평가라는 느낌인지 학교 가는 걸 한층 더 괴로워하게 됐다.

지난번에 봤던 중간고사 성적표가 없었다.
요즘은 알리미 앱으로 소위 ‘꼬리표 배부’까지 모두 학부모한테 통지가 와서 성적표 배부날도 당연히 알림이 올 텐데 하고 기다렸는데 나중에 보니 이마저도 1학기 성적을 한번에 통째로 산출하는 모양.(어쩐지 근처 중학교 중에 중간고사가 아예 없는 학교도 있더라니. 그 학교 애들은 한 한기에 기말고사만 봐서 시험 기간에 범위 때문에 멘붕이라고…)

그렇게 교육열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이 걱정(!)돼서 줄 세우기를 줄였으면 대입도 그 방법과 무관하거나 아니면 대학이 가장 중요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앞뒤가 맞을텐데 대학을 가지 않으면 그 뒤 진로 정하기가 더 어렵고 대학을 가려면 어차피 수능은 봐야 한다.
중고등학교 내내 도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동영상 찍기 등등으로 수행평가를 방어하면서 필기시험도 준비하는 게 무슨 해결법이었나 싶다. 더 무서운 점은 이게 올해 중2의 기준일 뿐 작년이 달랐을 수도 있고 내년이 또 다를 수 있다.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디어 같은 데서 입시나 공부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학교 다녔던 시절만 기준으로 삼고 이런저런 판단을 했었는데 막상 정말로 겪어보니 그 사이에 시스템이 많이 괴랄해져 있어서 아이들이 누덕누덕한 제도 안에서 고생하는 걸 보면 입맛이 쓰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갑자기 시험 일정이 불쑥 2주 밀리는 경우도 있고(중간고사 때 인근 학교 한군데가 그랬음) 혹은 학생이나 가족이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면 시험을 보러 갈 수가 없어서(추가시험 같은 것 없음)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혹시 나나 옆사람 때문에 애가 시험을 못 보면 안되니 꼼짝도 못하고(안그래도 린양 반에 어제 등교 못한 아이가 있다고..;) 학교 알리미앱이 울릴 때마다 혹시 뭐 안 좋은 소식인가 걱정하며 열어보는 나날이었는데 이것도 코로나 때문에 겪은 스트레스 중 하나 아닐까. 무사히 시험 일정이 끝나니 나도 덩달아 한숨 내려놨다.

by

/

6 responses

  1. 내년에 초등 들어가는 우리 딸 키우면서, 나도 최근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점점 알아갈수록 경악(!!) 하고 있는 중… 차라리 초등학교때부터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더라도, 학교는 나았지. 상업화의 최첨단인 학원에서 저리 대놓고 애들 레벨로 반가르기 하는 걸 보니, 끔찍하더라…

    1. Ritz

      터울 큰 둘째 키우는 혜린이 친구 엄마들 말이 요즘 엄마들은 혜린이 나이 때보다 더 극성이라던데? ^^;; 학원 엄청나게 돌리나 보더만. 애들 수가 점점 줄어드니까 학원들 타겟 연령층이 자꾸 내려간대.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니 불안한 엄마들 자극해서 벌어먹고 사는거지. 벌써 내년에 초등학교 가는구나. *.* 남의 애들은 왜 이렇게 빨리 크는 것 같은지. ^^ Welcome to my world~ ( ”)

      1. 학원을 안 보내려해도 초등학교는 두시에 끝난단 말에 멘붕 ㅋㅋㅋ 어차피 학원 돌아야 하는 운명(?)인 아이라~ 학원이 많은 동네로 담달에 이사간다 ㅋㅋㅋㅋㅋ(영어유치원 레벨테스트 봐야 입학된다는 말에 또 멘붕하며 이사 준비중이야 ㅋㅋㅋㅋ)

        1. Ritz

          1학년은 거의 12시 좀 넘으면 올걸. 애 보내놓고 돌아서면 하교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돠… 학원 다녀야하면 아무래도 선택지가 많은 곳이 좋지. 그것도 동네마다 편차가 크더라고. 영어유치원 레벨테스트야 뭐… 그거 때문에 과외 시키는 집도 봤는데. ㅋㅋㅋ

  2. 아이고…그냥 시험만 치던 시절이 훨씬 편하네요. -.-

    1. Ritz

      옆사람이랑 저랑 하루에 한 번은 그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 -_-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