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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 이야기를 읽은 후로 소비에트 연방 정부가 연방 내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 등지로 대규모 강제 이주시킨 ‘고려인의 강제 이주’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관련 영상이나 책이 보이면 챙겨보는 편.

1937년 10월 소련 극동 지방에 사는 거의 모든 고려인(171,781 명)이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되었는데 국내에서 추정하기로는 구소련 스탈린 치하에서 고려인 20만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고, 이 과정에서 2만5천여명이 숨졌다고 보고 있다.

이주 계획은 1937년 8월에 일본 첩자들이 러시아 극동 지방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는 목적과 함께 재개되었다. 그 법적 근거는 구소련 인민 위원회와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중앙 위원회의 공동 법령 #1428-326сс로, 극동 러시아 국경 한민족의 이주에 대한 것이었고(“О выселении корейского населения из пограничных районов Дальневосточного края”),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서명하였다. 이러한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겐리프 류시코프가 로스토프로부터 전임되었다. 이주는 전형적인 소련의 압박에 이어 진행되었다. 프라우다는 극동 지방의 분리주의 계획의 고발, 극동의 일본 간첩에 대한 기사를 내었다. 이주는 여러 단계의 NKVD 트로이카에 의해 엄중하게 기한을 감독하면서 진행되었고, 시행 중 수백 명의 당원들이 숙청되기도 하였다.

1937년 9월에서 10월까지, 구소련 당국은 극동 러시아로부터 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수만 명의 고려인을 이주시켰다. 172,000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계획적인 이주 정책의 일환으로 러시아 극동 국경지대로부터 중앙시아로 옮겨졌다. 이들은 열차를 통해 6,40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했는데 그 와중에 최소 수백 명이 열차 안에서 숨졌고, 굶주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방문하는 기차역마다 내려 처리되었다.

위키피디아 고려인의 강제 이주

나는 넓게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해서 세계사, 한국사는 각자 다른 과목(…)으로 생각하다가도 이런 자료들을 접하면 역사란 결국 ‘모두’의 이야기이고 세계가 격변하는 동안 한구석에서 멈춰 있었던 것만 같던 우리나라 역시 그 일부였다는 걸 새삼 느낀다.

고려인의 강제 이주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고 틀었는데 난데없이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있었던 고려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놀랐던 다큐.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 행사에 고려인 소년 공연단이 있었다니 마치 두 장르(?)가 크로스하는 걸 보는 기분..;

러시아는 제정 말기에 군인이 부족하자 고려인들에게 군에 입대하면 러시아 국적으로 주겠다고 했고 그 국적을 얻기 위해 입대하는 고려인들이 많았다고. 그들이 세계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에 포로로 잡혀 남긴 기록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한국사를 좁은 시각으로 배워왔는지’ 통감했다.

영상 27분 즈음, 오래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는 지직거리는 잡음과 섞여 한층 구슬프다.

전쟁으로 두 번째 징집됐다는,(그러고보니 무라카미 하루키 아버지는 전쟁에 세 번 징집됐었다고 했던가) 부인과 아들 금복이, 딸 샛별이가 있다는 27살의 김홍준은 머나먼 독일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 자신이 저 먼 독일땅 축음기 앞에서 아리랑을 부르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얼마전에 징집령을 내렸다는 요즘의 러시아 기사가 문득 생각나면서 그 안에 분명 러시아에 사는 고려인들도 포함되겠지, 까지 생각이 닿아 반복되는 역사에 씁쓸한 오후.

2 responses

  1. H. Son

    그.. 2차대전중 노르망디 에서 포로가 된 SS 군인중에 고려인이 있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고.. (이분도 비슷하게 쏘련군으로 징집 독소전쟁중 독일군포로. 다시 강제 독일군징집 노르망디..) 안산에 유난히 러시아 사람이 많은데 사할린 강제이주됐던 일제 징용인들 후손이 김대중 정부때 돌아와 정착한 이후로 가족을 한명씩한명씩 부르기 시작해서.. 암튼. 참. 중앙아시아의 한인들도 기구한 운명.

    1. Ritz

      노르망디에 한국인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나는 고려인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라의 수탈을 피해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나라를 잃었을 때 제일 열심히 돈을 모아 보태고 그 와중에 남의 나라에서 생존하기 위해 갈대밭에 벼를 심어 기어이 쌀밥을 먹으며 살아남은 게 너무 존경스럽더라고.

      저 다큐에 나오는 독일 포로 수용소에서 3년째라는 사람들은 결국 어찌 됐을까, 궁금하고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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